저는 탄소(Carbon, ₆C¹²)입니다. 억울합니다. 요즘 모든 사람이 저를 나쁘다고만 얘기합니다. 잘못한 게 없고 조금만 저를 안다면 제가 얼마나 유용한지,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정말 필요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남용하고 저를 나쁜 물질이라고 몰고 있습니다. 저는 빅뱅과 함께 태어난 수소(₁H¹)와 헬륨(₂H⁴)이 모여 별(천체)을 만들면서 핵융합으로 생겼습니다. 무려 130억 년이라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저는 검은 고체입니다. 양성자 6개와 전자 6개로 이뤄졌으며, 전자 배열은 1S2,2S2,2P2로 돼 있습니다. 전가각 2P는 2P6일 때 안정화되는데 저는 6이 아닌 2로, 4개가 비어 있어 다른 원소들과 쉽게 반응합니다. 메탄(CH₄)과 같이 수소원자 4개랑 쉽게 붙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주 좋아하는 술(알코올, C₂H₄O)도 저와 수소, 산소 화합물이고, 산소 2개와 결합된 이산화탄소(CO₂)는 탄산음료가 돼 여러분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이 CO₂와 CH₄가 저를 나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소재공학에서 아주 중요한 원소입니다. 땅속 깊은 곳 고온·고압 상태에서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아름다운 광채를 띠고, 경도도 모스경도 10으로 가장 강합니다. 저는 흑연(Graphite)이라는 100% 탄소결정체도 만드는데요. 이상하게도 다이아몬드와 정반대로 가장 연한 모스강도 ‘1 이하’를 가지고 있고, 검은 불투명한 특성이 있습니다. 가격은 저렴하고, 미끄럼 특성이 좋아 필기구 등에 연필심으로 사용합니다. 흑연 결정질탄소와 반대로 비정질탄소가 되면 저는 천연 고무와 결합을 잘해 항공기, 자동차 타이어에 강화첨가재로 사용합니다. 최근 노벨상을 받은 탄소 버키볼(C60), 그래핀(Graphene) 소재로 개발돼 스마트폰 등 IT기기에 투명전극 소재로 활용되고, 첨단 경량탄소복합 소재에도 쓰입니다.

저는 크기가 아주 작아 금속 원자들 사이에 침투해 들어가 침입형 화합물(Interstitial compounds)을 잘 만듭니다. 금속재료공학에서는 저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재료의 강도를 크게 향상시키는 데 사용합니다. 특히 철(Iron, Fe) 원소와 반응해 Fe₃C 탄화물을 형성하면서 철의 강도를 크게 향상시켜 줍니다.

또한 저는 모든 유기물의 기본 원소입니다. 제가 없으면 모든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신체 구조도 탄소 기반으로 돼 있지요. 그래서 우주탐사에서 다른 행성의 생명체 존재 여부를 따질 때 탄소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합니다. 지구의 역사를 규명하고 인류의 역사를 탐구할 때도 저의 형제인 탄소동위원소(C14)를 이용해 정밀하게 측정합니다. 이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이 없으면 공룡시대, 구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구분도 정확하지 않아서 역사 교과서는 제대로 만들어 질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인류 발전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오래전 지구에 생존하던 생명체들이 화석화돼 만들어진 탄소덩어리, 석탄과 석유입니다. 석탄과 석유가 없었더라면 현재인류가 지금 같은 문명을 이뤘을까요? 우수한 탄소에너지가 산업혁명도 만들어냈고 자동차, 우주선도 움직이게 했습니다. 플라스틱도 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에너지가 된 석탄과 석유, 플라스틱의 개발이 결국은 저를 나쁜 물질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석유·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 과정에서 과도한 CO₂가 발생하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과도한 육류의 소비는 엄청난 CH₄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었지요.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은 탄소화합물 플라스틱은 모든 지구 동식물에게 유해한 미세플라스틱이 됐습니다.

이제 제가 얼마나 애통한지 아시겠지요. 저는 정말 유용한 물질이고, 생명체와 인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의 과도한 사용이 오히려 저를 인류와 지구에게 돌이킬 수 없는 독약이 되게 했습니다. 결국은 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만약 저의 사용을 줄이지 못한다면 지구 안의 모든 생명체는 다 소멸해 먼 훗날 탄소덩어리, 석탄, 석유가 될 것입니다.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