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이다. 매년 이날이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축제에 가까운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고 TV로 중계된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별도의 시상식 없이 수상자의 거주지에서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약식으로 진행된 탓인지 노벨상 수상에 대해 대중뿐 아니라 언론의 관심도 대폭 줄었다.
시상식이 열리지 않은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1918년과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여섯 해의 노벨상 시상식은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 올해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인류에게 전쟁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는 시상식 2개월 전에 발표한다. 지난 10월 초의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는 우리나라 연구자의 수상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민의 관심과 희망이 어느 해보다 컸다. 그러나 수상이 불발되자 관심과 희망은 일순간 “왜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는가”라는 한탄과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사실, 현택환 교수의 노벨상 수상 유력 소식은 노벨재단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라는 민간 정보분석기업의 예측 서비스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된 것이다. 이 예측은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상위 0.01%에 속하는 연구자들을 추려 노벨상 유력 후보자로 지목하는 것으로 여기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연구의 수준과 업적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회사의 예측 결과가 당해 연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나라 연구자의 노벨상 수상 희망은 계속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연구의 질적 업적만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노벨은 노벨상을 만들라는 자신의 유언장에서 매년 국적에 상관없이 지정한 분야마다 ‘인류에 위대한 기여를 한 이’에게 상을 주라고 명시했다. 이에 노벨위원회에서는 매년 수상자를 발표할 때 그 업적이 인류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다.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견 및 치료법 개발에 공헌하여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세 명의 연구자는 누구도 치료제를 직접 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다른 연구자들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초연구를 통해 전 인류를 미지의 바이러스로부터 해방시켜준 공로를 인정받은 것을 보면 당장의 경제적 성과보다 그 결과들이 인류 전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과연 대한민국 사회는 노벨과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는 압축된 경제성장으로 인해 경제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Science와 Technology, 영어로는 두 단어인데 우리는 과학기술을 한 단어로 생각하고 기술만 중시 여기며, 연구개발은 Research와 Development 두 단어임에도 연구개발이란 한단어로 인식하고 개발에만 관심을 가진다. 이로 인해 좋은 기술을 만들어 내는 토양인 과학이 무시되고, 연구의 과정과 노력보다 개발된 기술의 경제적 성과에만 관심을 가진다. 과학자, 연구자는 없고 기술개발자만 인정받는 세상이다. 심지어 기초 과학자에게도 경제적 성과를 강요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당장의 성과와 시대 흐름을 좇아가기만을 강요당하는 현실 속에 인류 사회에 공헌하고자 했던 과학자의 꿈과 미래가치가 싹도 피우기 전에 사라지고 있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들이 핵심 연구 결과를 산출하는 데 걸린 기간이 평균 19년이다. 우리 사회가 과학자에게 그러한 기다림과 기회를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와 사회가 과학의 가치와 연구 과정의 어려움을 이해해 인정해 주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줘야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부산산업과학혁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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