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어낙안 폐월수화’(浸魚落雁 閉月羞花)는 중국 4대 미녀를 나타낸다. 춘추시대 ‘오월동주’의 틈바구니에서 오나라를 멸망케 한 월나라 미녀 서시(西施), 한나라 때 흉노족 왕에게 시집간 비운의 궁녀 왕소군(王昭君), 위·촉·오 3국이 천하 패권을 다투는 ‘삼국지’에서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미인계의 주인공 초선(貂蟬),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받은 양귀비(楊貴妃)의 특징을 땄다.

서시는 물고기가 가라앉는다는 ‘침어’(浸魚), 왕소군은 기러기가 떨어진다는 ‘낙안’(落雁), 초선은 달이 구름 뒤로 숨는다는 ‘폐월’(閉月), 양귀비는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수화’(羞花)라는 별명이 붙은 미녀다. 물고기와 새, 달과 꽃은 자연이다. 자연이 피워낸 미모라는 찬사를 시인묵객이 쏟아낸 셈이다. 그 이면엔 나라를 거덜낸 권력 쟁투와 사회적 격변이 있으니 이들을 오늘 소환한다면 “날 내버려 둬!”라며 절규할지 모를 일이다.

이 가운데 왕소군은 한나라가 흉노를 상대로 펼친 화친정책의 상징이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으로 유명하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은 봄이면 어김없이 읊조리는 시구다.

왕소군처럼 이국땅 흉노에서 삶을 이어간 또 한명의 한나라 여성이 채염(蔡琰)이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으나 전란을 피하진 못했다. 동탁이 반기를 든 와중에 흉노로 끌려가 왕의 아들 둘을 낳았다. 이를 딱하게 여긴 조조가 그를 흉노에서 데려왔다. 조조가 채염의 아버지 채옹과 친분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채염은 흉노 땅을 떠나기에 앞서 복잡한 심정을 ‘거주양난’(去住兩難)이라고 표현했다. 아들과의 정을 생각하면 흉노 땅에 머물러야 하고, 두고온 고국과 그리운 가족들은 눈에 밟히고…. ‘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르는 고사성어의 연유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21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내놨다. 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작은 것이 쌓여 큰 일을 성취한다는 ‘토적성산’(土積成山)이 29.7%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사태 극복 의지가 담겼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더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선 ‘거주양난’이 27.1%로 첫손에 꼽혔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고, 내년 상황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며, 대응책도 여의치 않다는 증거다. 이들에게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희망을!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