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황지우 시인의 시 ‘출가하는 새’ 첫 구절이다. 세속적 욕망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목표인 공동선을 위한 몸부림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은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본다’는 새를 통해 내일을 꿈꿨지 싶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시 두 편을 보며 떠올린 시구다. 그는 그제 “산산조각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다며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을 인용했다. 그는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정직 2개월 징계 의결부터 법무부 장관 제청, 대통령 재가까지 윤 총장 징계 처분이 하루만에 이뤄지는 와중이었다. 검찰총장 징계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인만큼 그의 사의 표명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앞서 그는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라며 이육사의 시 ‘절정’을 언급했다. 법무부 징계위가 한창 진행되는 때였다. 윤 총장 징계와 검찰개혁이란 과제를 향한 자세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그는 박상기·조국 전 장관에 이어 문재인 정부 세 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올해 1월 3일 취임식을 했다. 취임식에서 “검찰개혁 완수”를 다짐하며 “법무행정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본뜻은 ‘논어’(論語) 14편(헌문), 공자에게 제자인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공자 대답은 이렇다. “경으로써 스스로 닦아야 한다.”(修己以敬·수기이경) 자로가 더 캐묻자 “스스로 닦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어라”하고 이어 “스스로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라.(修己以安百姓·수기이안백성)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어려워했던 일이다”고 설명했다. 군자는 스스로 닦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인격체다.

‘경’(敬)은 공경을 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극히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를 계승한 송나라 학자 주자가 신유학의 핵심으로 삼았으며 조선 유학의 거두인 퇴계 이황이 이어받았다. 자기 수양과 개혁은 양날의 검과 같다는 이야기다. 취임식에서 공언한 목적을 위해 추 장관이 이 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추 장관 자취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로 윤 총장과의 갈등으로 얼룩졌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단행한 대규모 검찰 인사가 신호탄이었다. ‘윤석열 사단 해체 인사’로 불린 조치 이면엔 조국 전 장관과 현 정부 및 청와대 등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가 있다. 그 불씨는 이른바 채널A 검언유착 사건과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그리고 윤 총장 처가 수사로 커졌다. 문제는 ‘추·윤 갈등’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갉아먹으며 국정 동력마저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야 하며, 검찰권 행사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거나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되며, 재량권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취지가 흐려졌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 손을 들어줬다. “검찰총장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임명권자로서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며 사과했으나 ‘검사징계법상 대통령은 장관의 제청을 따를 뿐’이라는 이유로 윤 총장 징계안을 재가했다. 또 “추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수사권 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추·윤 갈등’은 이제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변했다. 윤 총장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징계처분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취소소송 등에 나섰다. 윤 총장의 징계와 추 장관의 사의 표명은 “검찰이 바로 서는 계기”가 아니라 또다른 전쟁의 시작인 셈이다. 법원에 맡겨진 징계의 정당성 판단과 함께 민심이 어느 손을 들어주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마음에 ‘경’을 두고 오로지 하나에 집중해 갈팡질팡하지 않는 것을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여 ‘경’의 요체로 삼아온 게 우리 전통이다. 검찰개혁은 문 대통령 공약 1호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은 윤 총장이 추 장관과 대립각을 세운 이유다. 그 점에선 주일무적이라 하겠다. 중요한 건 그 바탕이다. 민심을 우선하느냐, 그 목적만을 우선하느냐. 그걸 판단하는 것 또한 민심이다.

윤 총장 징계를 두고 밀어내기라며 그의 칼을 뺏었다고 한다. 국민을 위해 써야 할 칼을 검찰 스스로를 위해 휘둘렀으니 내려놓는 게 당연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칼 찬 유학자 남명 조식이 듣는다면 이렇게 꾸짖지 않을까. “정말 사심이 없었느냐, 정말 정의로웠느냐!” 그는 칼에 ‘마음을 밝히는 것이 경, 외면을 단정히 하는 것이 의’라는 글귀를 새겼다. 그 경의검(敬義劍)은 어디를 향할까.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