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온 나라에 근심이 가득하다. K 방역은 세계로부터 극찬받을 정도로 성공하는 듯했으나, 3차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방역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신규 확진자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000명 선을 넘어서며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의 격상을 검토하기에 이르렀고, 국민의 공포감도 치솟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자영업자들의 대출 증가액은 사상 최대로 치닫고 있고, 빚으로 버티던 사람도 폐업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내수가 휘청이면서 소상공인들은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만 국민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니다. 정치는 민생을 팽개쳤다. 예년 같으면 들떠있을 연말연시. 정치권은 바이러스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기는커녕, 여론을 양분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진영’만 있고 ‘민생’은 사라진 국회. 21대 국회의 현주소다.

연초 추미애 장관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검찰 개혁이냐 검찰 장악이냐’를 둘러싼 양 진영의 싸움은 국민으로부터 ‘X싸움’이란 평가를 받은 지 오래다. 국민은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느냐보다는 ‘격 떨어지는 싸움’ 자체에 진저리를 쳐왔다. ‘사의 표명’과 ‘2개월 정직’으로 일단락됐지만, 민생과 동떨어진 ‘추미애 vs 윤석열 무한 대결’은 절차적 논란을 남긴 채 법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뿐만 아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지지 세력은 이번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충돌했다. 추 장관의 재신임을 요구하는 청원과 윤 총장의 징계 철회 및 해임 반대를 요구하는 청원에 참여한 인원은 각각 30만 명을 넘어섰다.

秋-尹 갈등은 코로나19 위기 속에 의미 없는 국력 낭비이고, 이를 지켜봐야 하는 일반 국민의 피로감은 쌓여만 왔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는 투사’로 부각,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로까지 올라섰다. 윤 총장의 인기가 치솟으니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이른바 ‘윤석열 출마 방지법’을 발의했다. 공무원은 출마 시 선거 90일 전에 그만둬야 하는데 검사와 판사는 이를 1년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권후보 여론조사 1위를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고, 한 사람을 겨냥한 법을 만들겠다는 것도 코미디다.

#연말 정기국회와 함께 시작된 입법전쟁은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공수처법 개정안,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5·18 민주화운동 왜곡 처벌법…. 거대여당은 의석 수를 앞세워 정치색 짙은 법안들을 밀어붙였고, 그동안 별러왔던 법안들은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그러나 대표적인 민생 법안인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나, 환경미화원 등 필수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필수노동자보호법 등은 본회의에 부의되지도 못했다.

‘개혁’이란 명분으로 처리돼온 쟁점 법안들이 과연 얼마나 민생과 직결될까. 결국 권력 다툼에 ‘민생’과 ‘개혁’이 소모품으로 사용됐던 것은 아닐까. 법안 처리 과정도 그렇다. 법안 내용은 제쳐두고, 법안 처리 과정 곳곳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훼손됐던 부분은 분명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협치’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의회민주주의’ 역시 외면당했다. 철저한 ‘승자 독식’이었다.

#103석으로 쪼그라든 야당의 실력은 가감 없이 드러났다. 입법전쟁에서 아무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거대여당의 ‘독주 유혹’을 끊어내지 못했다. 이미지 쇄신에도 실패했다. 국민의 눈에는 아직도 ‘꼰대정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 이후 개혁과 쇄신을 외쳤으나 국민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마침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속 상태에 이르게 된데 대해 사과하고, 당시 집권당으로서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면서 용서를 구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 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지고 인적 쇄신을 해나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실천이 관건이다. 다만 당 안팎의 사람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람이 없다”는 푸념만으로는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기 어렵다. 누구는 이래서 안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된다는 편협한 생각을 털어내고, 대선 후보건 서울시장 후보건 가능성 있는 인물을 모두 끌어들여 원탁에 모아 경쟁하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야당이 건강해야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일련의 법안 처리로 지지층들을 설득할 ‘급한 불’은 껐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는 180여 석이란 거대여당의 힘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을 위한 노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선임기자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