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영화사를 열었다. 입장료 1프랑씩을 낸 30여 명은 세계 최초 영화 상영회 관객이 됐다. ‘기차의 도착’ 등 10여 편이 상영됐다. 이는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시네마토그라프’ 덕분이다. 촬영과 영사가 모두 가능한 이 장치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개발한 영사기를 발전시켰다. 시네마토그라프의 준말인 ‘시네마’, 곧 영화와 영화산업의 출발점이다.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125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사태는 영화 생태계를 허물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산한 올해 영화산업 매출 규모는 9132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63% 격감했다. 극장 관객 수는 6000만 명 선으로 역대 최다 관객이었던 지난해의 28%선에 그치며 20년 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와중에 지난 10월 열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영화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악전고투였다. 객석의 25%만 판매하면서 관객 수는 지난해의 10분의 1선으로 떨어졌으나 최종 좌석점유율은 92%를 기록했다. 영화인의 열정과 관객의 영화 사랑이 영화제를 지켜냈다.

BIFF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영화 ‘미나리’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아카데미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계 미국 감독인 리 아이삭 정(정이삭)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가족이 남부 아칸소주 시골 마을에 정착하는 과정을 담았다. 지난 2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내년 아카데미 영화상의 작품상·각본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후보작으로 꼽았다.

정 감독은 “실제 할머니께서 미나리 씨를 미국으로 가져와 심었다”며 미나리가 가족애의 상징임을 내비쳤다. 영화 제목을 미나리의 영어식 표기인 ‘Dropwort’ 대신 한국식 발음 ‘Minari’로 정한 이유다.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전초전’이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앞두고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 탓에 작품상이 아니라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된 것이다. 지난해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거론한 ‘1인치 자막의 장벽’이 올해도 여전한 셈이다. 봉 감독이 그 장벽을 뛰어넘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듯이 ‘미나리’가 수상 계보를 이어 ‘봄 미나리 살진 맛’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