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은 마치 밤과 같이 다가온 역병에서 시작한다. 아폴론은 역병의 화살을 쏘아 보내고, 그리스 병사들의 진영에 무시무시한 소란이 일어난다. 호메로스가 남긴 ‘일리아스’의 첫 장면이다. 아폴론의 화살에 맞아 노새와 개들이 먼저 쓰러지고 이어 사람들이 쓰러졌다. 트로이아 전쟁의 첫 장면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19라는 역병에 무참히 쓰러지는 우리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말은 고대 그리스어 ‘아메카니아(amechania)’다. ‘아메카니아’는 어찌할 도리가 없음, 그 때문에 생기는 무력감, 결과적인 고통을 나타낸다. 기계 장치나 방법을 가리키는 영단어 ‘메커니즘(mechanism)’은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반대말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없음’을 나타내는 부정접두사 ‘a-’의 유무다. 인류가 자부하던 문명의 메카니즘은 코로나19 앞에서 ‘메카니즘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무능의 고통과 자괴감을 표현하는 ‘아메카니아’를 처음 찾아낸 사람도 호메로스다. 오딧세우스가 외눈박이 폴리페모스를 찾아갔을 때 외눈박이 괴물은 다짜고짜 오딧세우스의 전우 둘을 먹어치운다. 이후에도 아침과 저녁으로 똑같은 만행이 반복된다. 이때 오딧세우스 일행은 이에 대처할 수 없었고 ‘어떻게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들은 크게 울면서 제우스에게 기도할 뿐이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차분했다. 지혜로운 오딧세우스 는 위기를 이겨낼 방책을 준비했다. 괴물의 눈을 찌를 꼬챙이를 뾰쪽하게 만들어 불에 달구었고, 향기로운 포도주를 마련했다. 영웅은 ‘아무것도 아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술을 먹고 잠든 괴물의 외눈을 찔렀다. 괴물의 눈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뿐 괴물을 죽이지는 않았다. 잠긴 성문처럼 동굴 입구를 막아선 거대한 바위를 치울 자가 외눈박이 말고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자 괴물이 여느 때처럼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바위를 치웠을 때 오딧세우스 일행은 가축들에 섞여 동굴을 벗어날 수 있었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이탈리아를 침공했고 한니발 앞에서 로마와 이탈리아는 그야말로 ‘아메카니아’의 깊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로마군의 연전연패였다. 당시 로마에서는 ‘한니발이 성문에’라는 말에 아이들이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니, 로마 시민의 큰 공포와 두려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굼벵이’ 독재관 파비우스는 전면전을 피하고 시간을 끌면서 한니발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소규모 병력만을 데리고 적진으로 뛰어든 한니발을 맞아 파비우스의 지연 전략만이 로마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공포와 절망이 불러온 발작적 공황(恐慌) 때문인지, 그들은 전쟁을 서둘러 끝내겠다는 정치 선동에 휩쓸렸고, 전쟁의 조기 종식을 약속하는 무모한 민중 선동가를 집정관으로 뽑았다. 물론 장기전으로 생계 곤란이 점차 가중된 시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총력의 속전속결을 외치던 새로운 집정관은 기원전 216년 여름 이탈리아 남부 칸나이에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한니발과 싸웠고 전멸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다. 8만의 로마 병사들이 그날 거의 전부 목숨을 잃었다.
늘 절망 다음은 발작적 공황이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코로나가 거짓말’이라는 현실 부정도, ‘세계 장악의 계획’이라는 음모론도 ‘아메카니아’의 절망감을 증명한다. 작년 3월에 10만 명이었던 세계 감염자는 순식간에 폭증해 1억 명을 넘어섰고, 코로나19 변종들까지 가세하면서 세계의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인구가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를 틀어막았고 시민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인구의 500%가 넘는 백신을 확보하는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싹쓸이 구매했다. 그들은 벌써 3900만 회가 넘게 백신을 접종하면서도 가난한 나라에도 백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출구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모두가 앞다투어 달려가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신중한 선택에 오히려 ‘실패’라는 낙인을 찍는다.
아침 해를 보았다면 아직 희망은 남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시민 멈춤’뿐이지만, 우리는 ‘메카니즘’을 곧 회복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대표자 에라스무스가 그의 ‘격언집’에서 유럽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격언이라고 칭송해 마지않았던,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를 되새길 때가 아닌가 싶다. 그는 빨리(festina) 그리고 천천히(lente)의 모순 조합을 가진 격언을 통해 우리의 게으름도, 우리의 조급함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던진다. 나중에 후회할 조급함과 경솔함을 버리고 태만함과 소홀함을 멀리하고 균형과 중용을 보여준다면 우리와 우리나라에 이보다 큰 이익은 무엇이겠는가? 빨리 천천히 합시다.
정암학당 연구원·로마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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