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정부 세종청사를 출입하는 동료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열에 아홉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부산시장 선거, 어떻게 되어 가느냐”다. 취재를 위해 만난 중앙 부처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이들은 “○○○보다는 △△△가 더 나은 것 같다”는 구체적인 분석까지 내놓는다. 근거를 들어 보면 나름 일리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부산과 연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부산 시민 못지 않게 누가 차기 시장이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생각해 보니 올해처럼 부산시장 선거가 전국의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터다. 우선은 우리나라 제1, 2도시인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는 특이성을 들 수 있겠다. 또 두 지역의 전임 시장이 모두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될 법하다.

더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부산시장 선거 결과도 차기 대선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점이다. 여권은 2018년에 이어 다시 유권자의 신임을 받아 그 기세를 이어가길 원한다. 반면 야권은 당시의 패배를 이번 만큼은 설욕하기를 갈망한다. 여야가 눈에 불을 켜고 선거전을 벌이는 속내다.

지금 여야는 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최종 후보자 선정을 위한 과정을 진행 중이다. 경쟁력 있는 이를 추려내 본선에 내보내야 하는 만큼 당 지도부의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감은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와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경선 후보자들의 절심함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개인의 처지에서 볼 때 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것은 정치생명을 건 일이다. 중도 탈락은 재기불능의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수를 내던진다는 ‘건곤일척( 乾坤一擲)’의 비장함이 묻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후보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부산시정을 이끌 적임자라 말한다. 누구는 국회의원 때의 의정할동을 강조하고, 다른 이는 풍부한 행정경험을 내세운다. 기업을 이끌었던 경력이나 젊음도 유효한 자기 홍보 수단으로 등장했다.

각 당 경선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을 보면 나무랄 데가 별로 없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 ‘동북아 해양수도 조성’ ‘청년 일자리 창출’ ‘메가시티 터전 마련’ ‘살고 싶은 부산 건설’ ‘100년 먹거리 만들기’ 등등. 참 매력적인 약속들이다. ‘말의 성찬’일지언정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런 약속들이 제대로만 된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경선 과정을 지켜 보면 내심 맘에 차지 않는 부분도 많다. 다들 나름의 내공을 갖춘 인물임이 분명하겠지만 “저 사람이면 확실하겠다”는 믿음을 주는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 경쟁자 간에 뚜렷한 차별성을 골라 내는 것도 만만찮다. 공약도 사정은 비슷하다. 뭔가를 화려하게 포장했지만 명확하게 와 닿는 것이 드물다. 과거 선거 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것도 적지 않아 기시감마저 든다. 어떤 이가 어떻게 부산을 살릴 방안을 제시하려나 싶어 주의 깊게 살피다가 결국에는 “쯧쯧”하고 혀를 차고 만다.

이 같은 현상은 각 당 경선 후보자들의 준비 부족 때문이라 여겨진다. 달리 말하면 별다른 숙고 없이 정치판 흐름에 따라 출마를 결심했다는 의미도 된다. 이는 인물난 또는 경쟁력을 갖춘 인사의 불출마 등으로 인해 여야 모두 유력 후보자를 보유하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됐다. 이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당내 경선에 나선 이들은 제대로 된 부산 발전 방안을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자신을 알려야 하는 처지에 직면했다.

여야는 당내 경선인 까닭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후보를 걸러낼 수 있는 데다 부산시장 선거에 나설 최종 후보가 결정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선거는 이제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조차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이들이 촉박한 기간 내에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신의 한 수’를 내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시민 누구나가 생각하듯 이번 부산시장 선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시장의 중도 하차라는 아픔을 겪었기에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부산 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당연히 여야는 엄격한 당내 경선을 통해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후보를 시민 앞에 내세워야 한다. 이런 조건이라면 유권자는 출중한 인물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한 명 만을 선택해야 하는 ‘잔인함’을 기꺼이 감내할 자세가 되어 있다.

민주 사회에 사는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특권이자 기쁨인 까닭이다.

염창현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