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탈레스의 ‘자연을 이루는 근원이 물’이라는 생각으로부터 그리스의 과학이 시작했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르키메데스를 거쳐 2000여 년이 지난 후 뉴턴에 의해 근대 과학이 탄생했다. 동양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우주론과 자연관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수학 체계도 결코 서양에 뒤처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피타고라스 정리와 그 증명을 알았고 원주율도 그 근사값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동서양의 자연학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이것은 근본적인 차이라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물에 대한 사고를 보면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했으며, 이후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에 의해서도 기본 원소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만물의 기본 물질로 여겨진 것이다. 동양에서도  물은 중요한 물질적 대상으로 고려되었다. 그러나 노자 도덕경의 ‘상선약수(上善若水)’편을 보면 ‘물은 최고의 선과 같다’는 가치적 측면을 강조한다. 물이야말로 다투지 아니하고 항상 낮은 곳에 처한다는 특성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가장 본받아야할 모범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즉 물질 대상을 단순한 연구와 궁리 대상만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삶의 가치를 제시해주는 중요한 척도로서 표현하고 있다. 

유학의 대표적 경전인 ‘대학(大學)’에 팔조목(八條目)이란 게 있다. 인간이 학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여덟 가지 덕목들이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학문의 궁극적 목적이 나라를 넘어 천하를 두루 평온하게 할 성인이 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 두 덕목인 ‘격물치지’인데 이는 사물을 깊이 탐구함으로써 앎에 이른다는 뜻이다. 학문의 처음 단계가 과학적 탐구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팔조목은 앎에 이르는 것만으로는 성인이 될 수 없으며, 정성스러운 뜻(성의)과 올바른 마음(정심)으로 깊이 자신을 닦는 과정(수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외부 사물에 대한 합리적인 앎과 자신의 내면적 수양이 결합할 때 진정 학문의 목적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규명과 가치 중립성에 중점을 두어온 서양에서 자연과학이 성립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떨어지는 물체의 낙하 시간과 거리를 쟀던 갈릴레이가 취했던 것과 같은 객관적이고 검증적인 학문적 방법론을 통해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고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였으며 이제는 물질세계의 이해를 넘어 과학이 신의 아성이라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영역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인간이 성취한 과학적 이해는 논란의 여지없이 매우 소중한 자산이며 이후로도 많은 결실이 축적될 것이다. 사물을 깊이 탐구하여 앎에 이르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며 또 계속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는 기후위기를 비롯하여 인류 생존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인류 스스로 초래한 사태이며 그 배경에는 지구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과학 기술이 있다. 격물치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우리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면 이제 대학의 팔조목을 다시 새겨야 할 때이다. 사물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와 함께해야 할 내면적 수양이 실종되어 있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의 수양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과학기술의 결실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누려온 인류 전체에 해당한다.

서양의 합리적 전통이 잘못 되었으니 모두 버리고 동양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적 절차들을 정확히 계획해야 하고 많은 부분을 현대 과학기술에 의존해야 한다. 단 학문의 객관성보다는 가치적 측면을 중시했던 동양의 전통을 간과하게 된다면 위대한 과학 지식들은 전혀 쓸모없게 될 것이다. 모든 학문은 그 주체인 인간이 생존한다는 가정 하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란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