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지난 5년간 추진한 ‘피란수도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말 공개된 해양수산부의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실시계획 변경고시안에 피란수도 유산 핵심인 북항1부두의 개발 방안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항만친수시설·함상공원·해안조망대 설치, 창고 리모델링 등의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원형 보존’이 되지 않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석연치 않은 것은 부산시가 상황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해수부가 “부산시 요구사항을 반영한 변경고시안”이라고 밝힌 것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사안이 복잡한 것 같지만, 이번 사태는 한 마디로 부산시 내부에서 개발론이 승리한 결과일 뿐이다. 시 내부에서는 북항 1부두에 대한 보존론과 개발론이 물밑에서 부딪혀 왔다. 보존론은 ‘북항 1부두를 포함한 9곳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훼손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그에 반해 개발론은 ‘북항재개발 성공을 위해서는 1부두를 휑한 상태로 두기 보다 어느 정도의 개발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동안은 보존론이 대세였다. 2015년 부산시가 먼저 목소리를 높이고 시민사회와 지역문화계 학계까지 합세해 의욕적으로 논의해온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 필요성이 공감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뒤바뀌어 버렸다.

부산시의 개발 선회는 그 방향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결정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적지 않다. 서병수 전 시장 때 시작됐고, 오거돈 전 시장까지 적극 추진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숱한 절차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처지다. 그런데도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한 어떤 소통 노력도 없다. 개발을 추진한 부서 관계자가 “두 의견을 놓고 고위층에서 개발 쪽을 택했고, 이를 해수부에 건의한 것”이라고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위층의 결정’ 만으로 수년간의 논의와 노력은 깡그리 무시한 채 일방통행식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자인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지난해 4월 오 전 시장 사퇴 직후부터 개발론이 우세해졌다고 본다. 시정 컨트롤타워 부재를 틈 타 벌어진 비정상적 급선회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개발이 불러올 파장이 실제로 만만치 않다. 세계유산 등재 전단계인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관장하는 문화재청은 이미 2018년부터 ‘원형 보존’을 요구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변경고시안대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지킬 수 없게 되고 세계유산 등재의 꿈도 사라진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 심사 때 원형 보존 못지않게 해당 도시와 주민의 열정을 주요 평가지표로 삼는다. 이래서야 어떻게 부산이라는 도시의 합일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시민이 납득할 공론화만은 이뤄져야 한다. 무책임한 일방통행식 행정의 나쁜 선례가 되지 않도록 부산시는 과정의 오류부터 다시 점검하고 책임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