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 사이에 트롯 열풍이 불고 있다. 모 TV의 한 트롯경연대회는 폭발적인 시청률을 경신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그중 한 참가자가 학창시절 학교폭력으로 인해 중도하차하는 일이 발생했다. 가해자가 울면서 어렵사리 진출한 준결승전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경연을 걱정하며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그런데 그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문제는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하기보다 피해자가 왜 지금 이런 문제를 일으켜 흥행하는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는가라는 편집의도가 다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준결승전 녹화 20시간을 앞두고 그 빈자리를 탈락자 중 한 명을 선정해 제작진이 참가여부를 묻는 장면에서, 당연히 약자인 그의 선택권은 이미 그 상황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폭력의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폭력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 쓰는 물리적 힘’(국립국어연구원 표준대사전)이라 정의된다. 그러나 이 용어규정에는 시대와 역사에 따라 보다 복잡하고 세밀한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상황을 함의해야 할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해자의 관점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논의되어야 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이런 폭력에 대해 인간 개개인의 자율적 존엄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국가나 집단 혹은 강자의 위해(危害)에 맞서 비록 힘없고 약하지만 이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적 진보(進步)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면에서 폭력은 이제 단순히 신체적 의미를 넘어 언어적, 심리적 폭력으로서 그 의미망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도 이에 비례해 폭력을 인지하는 감수성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사회적 미투 운동, 그리고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대해 깊이 있는 자성(自省)과 성찰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 또한 그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어떤 고통과 희생을 치르는지에 대한 가해자의 자기직면도 반드시 뒤따라야 할 명제다. 결국 폭력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서로의 사회적 관계 맺기에서 생겨나는 미숙한 상황과 그 갈등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상대방의 의지에 반해 부지불식간에 행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의 존재는 사라지고 가해자의 의지만이 그 중심에 서게 되며, 이때 피해자는 자신보다 강한 가해자에 대해 무력감과 절망을 느끼고 스스로의 정체성(正體性)마저 흔들려 영혼까지 피폐해지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책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가 생각난다.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이 되어 실제 소년재판을 받았던 과정을 계기로 책을 쓰게 되고 또 청소년 상담사로도 활동하게 된 저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떤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해자인 그의 아들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고 깨달으며 말한 구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오늘 뉴스를 보니 스포츠계의 학교폭력이 심각하다. 국가대표의 주축이었던 쌍둥이 여자 배구 선수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파장으로 다른 남자 선수들의 이에 의한, 또다른 피해자의 글까지 속속 밝혀지고 있다.

폭력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며 말하고 싶다. 이제는 서로에게 관용(tolerance)의 정신을 베풀라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남에게 군림하려는 우월의식을 버리라고, 그리고 상대방을 깊이 배려하며 공감하라고!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