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성폭력에 대항한 여성의 정당방위에 대해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려, 법적 잣대를 두고 논란이 새로 점화하고 있다. 지난 18일 부산지법이 내린 최모(여·75) 씨의 재심 청구에 대한 기각 결정이 쟁점이다. 최 씨는 18세이던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 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노 씨의 혀가 1.5㎝가량 잘렸다. 당시 법원은 최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번 기각 결정은 당시 판결을 존중한 것인데, 유사 사건에 대한 상반된 판례가 존재하는 데다 여성 성폭력에 관한 작금의 사회인식 변화와도 맞지 않아 논란이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이번 재심 청구의 사유는 당시 재판부의 정당방위 규정 해석 및 적용 오류, 혀 절단 중상해 여부에 대한 새로운 증거,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의 위법 등 세 가지다. 재판부는 세 가지 사유 모두 배척했다. 논란의 핵심은 첫째 사유다. 재판부는 “성범죄의 보호 법익을 현재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아니라 ‘여성의 정조’, ‘성적 순결’에 두는 사회문화적 관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1960년대의 공판 과정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직무상 범죄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과 같이 성별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한 가치로 실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면, 사회 전반적으로 뿌리 깊었고 제도로서도 존재하던 성차별적 인식과 가치관이 지금만큼이라도 옅어져 있었다면 ‘최 씨를 가해자로 낙인찍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얘기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건이 발생했던 50여 년 전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지만 지금은 된다는 뜻이다. 재판부의 판결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당시와 지금의 법규가 달라야 한다. 하지만 ‘정당방위’ 조항은 지난해 12월 사소한 문구 수정만 있었을 뿐, 우리 형법이 제정·시행된 1953년 이래 당초의 법적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1964년의 법원 판결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건 정당하다. 나아가 이를 배척한 재판부의 판단이 납득하기 어렵다. 상반된 판례도 있다. 1989년 대구고등법원은 강제로 키스하는 남성의 혀를 물어뜯은 여성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결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으며, 되레 성폭력 가해자들이 강간치상 등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최 씨 측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고 의사를 밝혔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정당방위 조항은 약자의 자기방어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법적 보루다. 이 법익이 살해 시도 등 대부분의 형사 사건에서는 보장되는데도, 유독 남성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자기방어와 관련해선 판단이 오락가락한다. 항고심 재판부의 전향적 판결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