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 때문에 바깥 활동을 자제한 탓이리라. 창밖을 바라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하늘에는 밝은 태양이 떠 있다. 창밖 풍경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은 사람의 마음 같다. 마음이 심란할 때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마음이 마음을 위로하듯 하늘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늘은 어머니 품 같아서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위로받는지도 모른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우리에겐 희망이다. 새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우리는 소원을 빌기도 하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하지 못해 아쉽지만 내일의 해는 내일 다시 떠오르기에 아쉬움을 뒤로 할 수 있다. 가만히 보면 태양은 참 부지런하다.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를 조금씩 옮기며 골고루 빛을 주는 평등함이 한결같다. 태양의 빛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그 빛으로 해서 창가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봄에 피어나는 푸른 새싹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태양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우러러 경외한다.

태양 아래로 산이 보이고 산의 중턱에는 아담한 암자도 한 채 자리하고 있다. 조금 검푸른 빛이 도는 소나무 군락들이 듬성듬성하고 잡목들은 잎을 다 떨어뜨려 아직 앙상해 보인다. 산은 벗은 모습 그대로 햇살을 받아 환하다. 벗은 모습이라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버티고 앉은 모습이 덕을 쌓은 듬직한 사람 같다. 벗었다고 하여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시기 질투도 없이 꿋꿋이 인내하는 모습으로 겨울을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산이 좋고 닮고자 한다.

가까이에는 작은 공원이 있고 산다화 울타리 안에 늙은 벚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벚나무는 하늘로 가지를 뻗어 올리고 있다. 새가 둥지를 틀도록 배려한 나무의 품이 넉넉하다. 벚나무는 새봄에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앙증맞은 봉오리를 맺고 부지런히 물관으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을 터이다. 벚나무 위에는 까치 몇 마리 날아와 좋은 소식을 전해 주려는지 깍 깍 깍 울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귀를 세우고 등을 활처럼 꾸부려 사냥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차하면 뛰어올라 사냥감을 낚아챌 자세다. 어떤 때는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금살금 기어서 창문 앞을 지나가기도 한다.

산다화 울타리 옆으로 나 있는 보도를 따라 사람들이 종종거리며 지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보이진 않지만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벚나무 가지를 살랑살랑 흔든다. 바람은 서 있는 나무와 달리 영혼처럼 자유롭다.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계절의 소식을 전한다. 꽃바람 비바람 가을바람 눈보라 등을 맞아보았다면 알 수 있다. 바람은 나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바람 따라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생각으로 가보는 일이다. 멀리 아프리카도 가고 북극도 가고 사막도 가고 윤동주의 <서시>에서처럼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먼 청천으로 가 별을 만져도 보는 것이다. 이렇듯 상상 속에서 나는 행복한 나그네가 된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매일 보는 풍경 같지만 나름대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창 안으로는 들어 올 수 없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서로 눈을 맞추며 흐르는 세월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또 다른 하나의 삶이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사람이 힘들다. 우리에게는 이 어려움을 견뎌낼 힘이 필요하다.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새해에서 충전의 시작을 알리는 정월 대보름도 지났다. 이제 만물은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바쁠 것이다. 정중동(靜中動)이라 했던가.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는 새봄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명상에 드는데 휴대전화 소리가 고요를 깨트린다. 전화는 뜻밖의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때론 기쁜 소식도 있지만, 슬픈 소식도 있다. 앞으로는 기쁜 소식이 많았으면 좋겠다. 세상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인·인제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