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 세대는 밴드를 그룹사운드라고 불렀다. 그 시절 못 해봤던 밴드 활동의 아쉬움과 호기심은 늘 가슴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지인들과 ‘선수촌 밴드’라는 이름으로 음악 동호회를 만들게 되었다. 통기타만 쳐 봤던 나에게 맡겨진 파트는 베이스 기타. 새로운 도전이기도 해서 약간 설레는 맘으로 기타와 앰프를 산 지 어느덧 10여 년. 늦가을에 아파트 공원에서 정기공연을 해왔는데, 7080밴드답게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와 마그마의 ‘해야’는 우리 밴드의 단골 메뉴이다.
베이스의 기본이자 핵심은 뮤트(mute). 한 줄을 튕길 때 나머지 세 줄이 소리 나지 않게 뮤트시켜 주지 않으면 다른 줄이 울려서 음이 지저분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밴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베이스기타의 역할은 기타나 건반이 화려함을 뽐낼 때 있는 듯 없는 듯 리듬과 멜로디를 부드럽게 연결하면서 음악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베이스가 받쳐주는 연주가 노오란 3월의 꽃 수선화라면 베이스가 없는 공연은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린 5월의 모란이라고 할까?
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적 취향이나 가치관의 차이보다 멤버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나 끝내 뱉지 말았어야 할 말본새 없는 말 때문에 해체의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무심결에 뱉어내는 정제되지 않은 말 한마디 때문에.
레거시 언론과 정치권에서 쓰나미같이 토해내는 말들과 요즘 특히 1인 미디어를 통해 포장되거나 재가공되어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말의 전쟁은 동네 음악밴드 멤버들 간 말다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불과 한 달여 전에 구시대적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전직 기자 출신 여성 국회의원과 엄마 아빠 찬스를 비난할수록 도리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는 칼럼을 쓴 현직 여성 논설위원의 말과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인지도 제고를 위해 고의로 뱉어낸 것이라면 두 사람의 노이즈 마케팅은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마이너스 파급성은 너무 커 보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 비접촉이 일상화되는 바람에 초연결사회를 앞당겨 살아가게 된 우리는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말과 1% 진실이 들어있는 거짓말을 특히 조심해야 하겠다. 유튜브를 예로 들면 접속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에 따라 제공되는 추천 영상이 모두 각양각색이듯이 AI(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인터넷 이용자의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보인지 필터링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 위주로 추천하고, 듣고 싶은 것 위주로 추천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필터버블의 늪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경북 예천의 한대마을에는 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입으로 뱉어낸 말을 묻어놓은 말의 무덤인 언총(言塚)이 있다. 무덤에는 분(墳) 묘(墓) 총(塚) 릉(陵)의 네 종류가 있는데, 그중 총(塚)은 왕족의 무덤이지만 누구인지 모를 때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말 무덤을 언총(言塚)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작 묻힌 말들은 왕의 말이 아니라 거짓말, 상스러운 말, 상처가 되는 것들이라고 한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사람의 입은 화(禍)가 들어오는 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뱉어버리는 것보다 언총(言塚)에 묻는 게 더 나은 말은 과감하게 묻어서 신축년에는 진실한 말, 위로가 되는 말, 아름다운 말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작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에 나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베이스기타가 소리 나면 안 되는 나머지 줄을 완벽하게 뮤트 시킴으로써 곡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거짓과 왜곡, 상처를 주는 말은 모두 뮤트 시킨 다음 과감하게 언총에 묻어버리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말로 가득 찬 향기로운 ‘말의 공연’이 일상화되면 좋겠다.
부산해운대구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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