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한국인인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는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 사회를 비판해 온 역사학자다. 러시아 태생임에도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물론 그의 견해와 다른 생각도 있지만, 한국 역사부터 정치체제, 문화, 한국인의 고정관념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폐부를 찌르는 비평은 송곳처럼 날카롭다. 그런 박 교수가 한국의 근본 문제로 서울공화국을 지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박 교수는 최신작 ‘미아로 산다는 것’(사회비평 에세이)에서 수도권 독과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국내총생산의 84%를 차지하고 나라경제를 좌지우지하는 64개 주요 대기업들의 본사가 사실상 수도권에 다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이로 인해 그들의 거래처들, 그 샐러리맨들이 이용하는 서비스업체들, 그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유치원·학교가 모두 서울에 모이게 된다. 이런 판에 무슨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야기하겠느냐”는 개탄이다.

그러면서 강준만 교수의 비판처럼, 지방이 ‘식민지’로 살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엄청난 격차를 해결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취업 때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정부 지원금의 ‘수도권 명문대 편향’부터 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의 균형발전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그간 누차 언급했듯이, 중앙집권 관료체제의 뿌리가 워낙 깊어서다. 박노자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그 전근대적 계보는 조선시대의 이른바 경화벌족(京華閥族)이다. 즉, ‘한양’이나 그 인근에 근거지를 갖고 ‘대대로’ 요직과 권한을 독차지하던 세도가들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구조에 큰 변화가 없는 게 한국 사회다. 요즈음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LH 직원들의 수도권 신도시 부동산투기 의혹 사태도 그런 흐름의 한 단면으로 읽힌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조직적으로 반대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거듭 말하지만, 가덕신공항은 단순히 공항 하나 더 짓는 게 아니다.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체제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려는 지역의 생존 몸부림이다. 신공항과 복합물류체계를 기반으로 수도권에 필적하는 거점 대도시권을 구축하지 않고서는 활로가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중앙관료집단은 터무니없는 반대논리로 여론을 호도하고, 수도권 언론은 이에 편승한 왜곡 보도로 딴지를 걸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국가공무원의 법적 의무를 제기한 점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절차상 문제를 인지한 상황에서 가덕신공항특별법에 반대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와 성실의무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중앙관료층의 서울중심주의가 얼마나 공고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기야 수도권에는 기존 거미줄 전철망 외에도 광역급행철도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곳곳에 신도시 건설도 끊이지 않는다. 이러니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릴 수밖에 없고,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기도 힘들다.

그런 맥락에서 헌법의 국가균형발전 의무는 왜 준수하지 않는지 되묻고 싶다. 제123조에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그뿐만 아니다. 헌법 전문을 위시해 제11조, 119조, 120조, 122조 등 균형발전에 관한 국가책무를 규정한 대목이 많다. 역대 정부와 관료들이 여기에 충실했다면 오늘날의 지방 황폐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도 가덕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직무유기니 성실의무 위반이니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자가당착이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지방식민지 독립선언: 서울민국 타파가 나라를 살린다’(2015년)에서 중앙집권세력의 이런 행태를 ‘파렴치한 위헌 행각’이라고 일갈했다. 헌법의 균형발전 조문이 지켜지지도 않고, 빈껍데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헌법 조문과 정신을 유린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에 대해 분노해야 하느냐’고 그가 외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괴물과 같은 수도권 초집중화로 지방에는 한숨이 가득하다. 부산만 해도 학령인구가 지난 20년 사이 반토막 났고, 지역대학들은 신입생을 채우지 못해 아우성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국내 17개 광역시·도 중 10곳에서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자연감소가 나타났는데, 이들 모두가 비수도권이다. 그 수는 불과 5년 전의 5배 규모다. 228개 기초자치단체의 소멸위험지역도 5년 전 80곳에서 105곳으로 늘었다. 균형발전을 위한 대전환이 없는 한 그런 추세가 지속될 게 뻔하다. 그래서 중앙집권층에 다시 묻는다. 헌법 제119조, 123조를 알고나 있느냐고.

편집국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