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소굴소식’(三笑窟消息)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도사 극락선원을 찾은 건 1997년 1월이었다. 삼소굴은 근대 한국불교의 고승 경봉(1892-1982) 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머물던 극락선원의 작은 절집이다. 경봉 스님이 크게 깨친 후 세 번 웃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삼소굴소식’은 경봉 스님이 경허 만공 용성 동산 한암 스님을 비롯해 만해 한용운까지 고승들과 주고받은 편지 247통을 담은 책이다.

편지라고는 하나 소소한 안부보다는 선문답이 오갔으니 고승들의 깊은 깨달음이 깃든 귀중한 자료다. ‘근대한국고승서간집-삼소굴소식’을 펴낸 이는 명정 스님이다. 1960년부터 1982년까지 경봉 스님을 모신 ‘영원한 상좌’다. 이웃집 어른처럼 넉넉한 인상의 명정 스님은 “편지가 초서체로 쓰여진 데다 선문답이라 번역에 애를 먹었다”면서도 큰 짐을 던듯 편안해 보였다. 여기까지라면 통상적인 인터뷰라 하겠으나 그날 명정 스님과의 첫 만남엔 특별한 경험이 더해졌다.

마침 내방객이 많았다. 선원을 한 바퀴 돌고, ‘삼소굴소식’을 뒤적이고 있으니 명정 스님이 바랑 하나를 건네주며 정리를 부탁했다. 그 속에 시주함에 들었던 1000원짜리 지폐가 가득했다. 해가 지고서야 명정 스님과 마주 앉았다. 같이 간 선배 기자와 셋이서 밤을 새워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여명이 밝아올 무렵 “스님들이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절 살림 잘하는 것도 ‘도’ 닦는 방법 중 하나야”처럼 툭툭 던지던 명정 스님의 말을 곱씹으며 돌아왔다.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는 경봉 스님의 입적 전 경구처럼 알쏭달쏭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극락선원은 이 에피소드와 함께 각별한 곳이 되었다. 특히 이맘때 극락선원은 영축산을 비춘다는 작은 연못, 영지를 중심으로 산 쪽의 극락암과 반대편의 벚나무 피안앵(彼岸櫻), 그리고 영지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홍교가 연출하는 분위기가 절묘하다. 벚꽃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 벚꽃이 피었으니 극락과 인간 세상이 연결되는 셈이다. 불가에서 벚나무는 속세를 떠나 극락, 피안으로 이끄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고려 팔만대장경 목판의 60% 이상이 산벚나무다. 극락선원 피안앵은 경봉 스님이 심었다고 한다.

온 천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음 닿는 대로 벚꽃 길을 즐길 수 있다. 어디서든 꽃구경할 때 이런 속뜻을 함께 새긴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오늘, 명정 스님이 입적한 지 2년 째 되는 날이다. 극락선원에선 음력으로 따져 2월 19일인 오는 31일 명정 스님을 기리는 법회를 연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