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3일 부산시에서는 시장이 갑자기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입에도 담기 창피한 성추행 사건으로 오거돈 전 시장이 머리를 숙였다. 당시 부산시민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그로부터 1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변성완 김선조 이병진 등 3명의 권한대행이 시 행정을 책임지다가 지난 8일 박형준 전 동아대 교수가 새 시장이 됐다. 그동안 권한대행의 연속으로 시정이 불안했으나 새 시장이 선출된 지금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박 시장을 둘러싼 여건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덕신공항 건설과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코로나19 방역 등 현안이 쌓여 있다. 가덕신공항은 특별법이 통과됐으나 여러가지 난관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사전 타당성 조사를 위한 용역을 발주했지만 수도권 언론과 TK 국회의원들은 가덕신공항특별법이 선거용이었다며 원점회귀를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이 조금이라도 애매한 입장을 보인다면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현재까지 박 시장은 가덕신공항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내년 3월께 사전 타당성 조사가 끝나지만 결론이 어떻게 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있어 그 결과로 정권이 바뀐다면 가덕신공항 건설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부산월드엑스포 개최지는 2023년 결정된다. 올해 6월 국제박람회기구(BIE)에 신청서를 제출한다. 월드엑스포 개최에는 주제가 중요한데 아직 주제가 잡히지 않았다. 현재 유치 신청서 제출을 위한 마스터플랜 용역이 진행 중이다. 물론 산업부와 협의해야 하지만 부산과 시대정신에 맞는 멋진 주제를 선정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월드엑스포를 개최하려면 넓은 용지 확보도 중요하다. 55보급창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곳을 용지로 활용한다면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침 55보급창을 부산항신항 남측 잡화부두로 이전하기로 부산시와 미군이 협의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코로나19 방역의 경우 백신을 접종하고 있지만 그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아 방역 당국이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2월 21일 첫 확진자가 나온 후 시민은 1년이 넘도록 방역 당국의 지시에 따라 외부활동을 삼가한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자영업자들 역시 생계 유지가 어려울 정도이지만 참고 있다. 하지만 이제 13개월이 넘으면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방역에 저항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박 시장에게는 이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난제 중의 난제다. 박 시장은 취임사에서 ‘광범한 합의, 최적의 결정, 신속한 집행’이라는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시의회를 설득하는 일도 박 시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47명의 시의원 중 39명이 민주당 소속 의원이다. 이들이 박 시장의 뜻대로 예산을 승인하고 정책에 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사사건건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박 시장의 재선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 시장 주변을 둘러보면 지지한 시민과 지역 국회의원 말고는 우군이 없다. 시의회 국회 정부 청와대 모두 여당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 박 시장이 여당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박 시장은 보궐선거 때 ‘부산을 바꾸면 대한민국이 바뀝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의 주장대로 부산은 바꿨다. 하지만 정권을 바꾸기 전까지는 사실 박 시장의 뜻대로 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박 시장의 임기 1년3개월 동안 혼자 힘으로 뭔가를 이루기는 힘들다.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야당 시장이라고 해서 앞선 여당 시장의 정책을 무조건 뒤엎고 가야 한다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다. 이렇게 하면 시민만 피곤하다. 특히 보궐선거로 된, 임기가 짧은 시장이 가야할 길은 아니다. 사실 박 시장은 업무를 파악하는 데 임기의 대부분을 보내야 할 운명이다. 길게 봐야 한다. 임기 동안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시정을 바라보고 결정하는 게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박 시장도 이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가 취임사에서 ‘저는 전임 시장이 추진하던 일이라 해서 무조건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임기는 1년 3개월에 불과합니다. 부산이 가진 과거와 현재의 모든 자원을 모으고 동원하겠습니다.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야가 있을 수 없습니다. 초당적 협치를 하겠습니다’고 밝힌 것은 이를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본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했다. 성인 ‘성’ 자에 귀가 먼저 나오는 이유다. 성심을 다해 제대로 들은 뒤 정성을 다해 말한다면 설득하지 못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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