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을 통한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회원국의 개도국 지위가 선진국으로 바뀐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UNCTAD는 창설 당시 결의에 따라 회원국을 4개 그룹으로 구분한다. A그룹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주요 개발도상국이 포함된다. B그룹에는 선진국, C그룹에 중남미, D그룹에는 러시아와 동유럽이 속한다. A그룹이던 한국이 이번에 B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된 것이다. 외교부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서 한국의 선진국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확인하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가교 역할이 가능한 성공 사례임을 인정받은 계기라고 자평했다.

이 같은 결과는 미래를 내다본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누리는 데만 치우쳐 다가올 위기에 대처하는 데 미흡한 면이 있다. 여야를 떠나 국가 미래를 향한 총체적 지혜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해방 이후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눈부신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자부심은 잠시 접어두고 그동안 소외되거나 균형 발전을 이루지 못한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시기다. 그런 차원에서 국토 균형 발전의 시각과 동북아 관문 역할의 담당을 한다는 차원에서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이 매우 구체적으로 입안되고 실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후화된 원전해체산업에 대한 대비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두 자녀 낳아 기르기에서 한 자녀 낳아 기르기를 장려하던 정책이 10여 년 전까지도 활발히 시행될 정도로 근시안적인 정책을 펼치던 나라지만 이제는 인구 절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족적 지혜를 중·장기적으로 펼쳐야 할 위기에 처했다. 무엇보다 안심하고 자녀를 출산하려면 부담없이 다자녀를 무상으로 양육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무너져 가는 대학을 비롯한 교육 인프라를 평생교육시스템으로 시급히 전환해 기왕에 갖춘 양질의 교육 인프라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도 빠뜨릴 수가 없다. 대학 역시 산·학·연의 주체가 돼 상아탑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과감히 새로운 섬김의 주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미래의 비전을 위해 마음껏 활동하는 무대를 마련해 주고 창의적인 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 간, 세대 간, 이념 간의 장벽을 초월한 장을 열어 주어야 한다. 안정만을 바라는 집단적이고 이기적 생각은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고 마침내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성공 모델만을 강조해서는 대부분 위축되기에 모두가 함께 가는 장을 끊임없이 열어 주어야 한다.

중소기업과 강소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 돼야 진정한 선진국이 되지 않겠는가. 전체 기업의 88%, 종사자들의 99%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중소기업을 말로만 위한 대서야 대기업과의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명목 하에 공무원과 공기업 정원을 늘리는 데 에너지를 쏟는 현실에서 중소기업에 도전하는 젊은 인재를 기대하기란 더욱 힘든 상황이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정책적인 지원을 집중한다면 일자리 만들기는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 확신한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선두라고 하는데 그 중 중소기업에 배당되는 예산 규모는 부끄러울 정도로 적다. 이것이 시정이 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제조업 강국이고, 그에 걸맞은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중소 제조업의 CEO(최고경영자) 연령은 갈수록 노령화돼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선진 제조 강국인 독일과 스위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밀 제조업은 수백 년에 걸친 기술 개발을 통해 발전해왔다. 주부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연 매출 8조 원의 독일 쌍둥이 칼 ‘헹켈’도 400년 가까이 된 기업이다. 연간 250억 달러어치를 수출하는 스위스의 시계산업도 300년 이상의 기술 개발을 이어온 가운데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감히 가업승계가 가능하도록 관련 입법이 전향적이고 신속히 입법되는 등 그 환경을 과감히 열어 주어야 한다.

국가 R&D예산도 중소기업에 쓰이도록 해 젊은 인재들이 중소제조업에 긍지를 갖고 참여하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나라가 세계의 주역으로 발전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선거 때만 되면 새로운 트렌드의 ‘구호성 공약’이 난무한다. 이제는 그 에너지를 중소제조업을 살리는 데 과감히 투자하기를 원한다.

부산시 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