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지만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은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꽃 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면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의 슬픔은 더 커진다. 일면식이 전혀 없는 제3자라도 쯧쯧하고 혀를 찰 수밖에.

지난 4월 스물 세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청년 노동자 이선호 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젊은이는 평택항에서 일하던 중 낡은 개방형 컨테이너의 오작동으로 무게 300㎏의 부속물에 맞아 숨졌다. 평소 컨테이너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산업현장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씨의 친구가 청와대에 올린 국민청원에는 9만3514명이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항만업계에서도 산재 발생 사례가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등의 통계를 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산재로 사망한 항만노동자는 33명, 부상자는 1193명이다. 부산항에서는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5월 23일에도 부산항 신항에서 30대 노동자가 후진하는 지게차 뒷바퀴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정부와 정치권은 관련 법 발의 등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 나섰다. 결과물은 지난달 24일 도출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항만안전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어 정부는 같은 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이 법안을 의결했다. 특정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뒤 사흘 만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정부가 항만 내 사고를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26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항만안전특별법의 차질 없는 이행을 주문했다. 이 법은 내년 7월 27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주요 내용은 전국의 모든 항만에서 사업장별로 안전관리계획 수립·항만안전점검관 도입·노사정이 참여하는 항만안전협의체 구성 의무화 등이다. 이 가운데 눈 여겨 봐야 할 조항은 항만안전점검관 제도다. 앞으로 항만안전점검관은 항만 사업자의 안전관리계획 이행 여부를 살피는 한편 미비한 점이 발견되면 시정조치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는 2019년 12월 부산항에서 20대 검수원이 컨테이너에 끼어 사망한 뒤 항만 분야에서도 안전 관리를 총괄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국회에서 관련 법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의견 차이로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항공업계는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의 괌 추락 사고 이후, 철도업계는 2011년 광명역 KTX 탈선 사고 이후 각각 항공·철도안전감독관 제도를 도입했다. 해양수산부와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이 법을 바탕으로 항만의 안전체계를 구축한다.

정부는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항만 내 사고 발생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내년 1월부터는 안전조치 소홀 등의 이유로 중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관리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예정이어서 사업주의 경각심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시각은 정부와 다소 차이가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긍정적이지만 사업주의 안전의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법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힘들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항만안전특별법이 노동자의 근로 여건 개선이나 안전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 방침 수립 대신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통제 인력만 늘렸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특정 업무 수행을 위해 설립한 기구가 시간이 흐르면 초심을 잃은 채 ‘상전 역할’을 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아온 까닭일 터다. 항만안전협의체만 해도 그동안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조직을 이번에 의무화했을 뿐이어서 기존 조직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 법안의 제정 의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제2의 이선호 사태’ 발생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근거다. 물론 정부로서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번 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의지를 여러 번 밝혔다. 또 정부의 단호한 결심을 법 시행 이전부터 애써 의심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매사는 불여튼튼’이라 했다.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 뿐 아니라 각계의 다양한 의견도 폭 넓게 수렴해 정책 실행에 허점이 없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항만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그 정도로 높다는 의미다. 항만 노동자의 어이 없는 참변 소식을 이제는 그만 들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