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직 중학교 체육교사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육상부’에 뽑히게 되었습니다. 연습 후 손에 쥐게 되는 우유나 빵도 좋았지만 육상부 유니폼과 ‘스파이크’를 신고 뛸 때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운동선수가 되면 출세길에서 멀어진다는 어머니의 신념에 몇 달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지금도 육상경기를 보면 그때의 추억이 소환돼 심장이 먼저 반응합니다. 이런 제가 얼마 전 도쿄올림픽을 본 후 흥분에 잠을 이루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육상계에 일어난 경사를 목격한 것입니다. 높이뛰기 경기에서 우상혁 선수가 2ｍ35㎝를 넘어 4위를 차지했습니다. 혹자들은 “메달 순위에도 못들었는데 무슨 경사인가”고 반문하겠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올림픽 4위는 한국 육상 필드 종목의 역대 최고 순위입니다. 게다가 1997년 이진택 선수가 기록했던 한국기록(2ｍ34㎝)을 무려 24년 만에 새로 쓰게 된 ‘사건’입니다. 우상혁! 그 대단한 일을 해내고도 오히려 칼 같은 각도로 거수경례를 올려붙이며 국민에게 또 한번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사실 육상종목은 순발력과 지구력, 유연성 등 인간 신체 능력의 기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기초 종목에 속합니다. 고대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일부 투기종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육상종목이었습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 볼까요. 야생동물에 비해 우리 조상은 힘이 약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도 없었습니다. 이런 유약한 그들에게 오래달리기-걷기 능력조차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육상 실력이 생사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죠. 달리기를 잘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요즘도 일부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육상을 잘해야 취업을 할 수 있는 직업군도 있거든요. 대부분의 기초체력을 요하는 직군(사관생도 경찰 소방관 군인)에 입직하기 위해서는 100ｍ달리기나 멀리뛰기 등을 거쳐야만 합니다.

운동기능에 있어 기초와 기본을 상징하며 체력의 근간이 되는 육상종목이 현실에서는 큰 인기가 없습니다. 육상선수로 열심히 운동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종목을 갈아타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구기 종목 등으로 스카우트 돼가는 것이죠. 대중의 호응과 박수 속에서 운동하고픈 어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여러분도 야구장이나 축구장은 직접 찾아가 보셨겠지만 육상경기 관중석에 앉아본 분은 별로 없으실 거예요. 현실이 이러하니 정부와 기업의 지원도 인기종목과 국제대회 입상확률이 높은 종목으로 편중될 수밖에 없나봅니다.

그 누군가는 팔다리가 짧은 동양인의 특성상 육상종목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체적 조건에서 대동소이한 일본과 중국은 정부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이미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행정·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초종목의 저변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함성이라곤 없는 텅빈 육상경기장에서 묵묵히 운동에 매진하는 그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관심과 지원으로 그들의 등을 두드려 줄 차례입니다.

고운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