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사상 처음으로 재산권의 사회성과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을 규정했다. ‘소유권(재산권)은 의무를 수반한다. 그 행사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하여야 한다’는 제153조가 그것이다. 모든 현대 헌법이 이를 본받아 재산권의 사회성을 명시했다.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하며,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우리 헌법 제23조 또한 그 영향이다. 독일은 이 전통을 이어받아 1949년 제정한 ‘본 기본법’에서 재산권의 사회성을 강화했다. 제15조에 ‘토지와 천연자원, 생산수단은 사회화(공유화)를 위한 보상 방식과 규모를 정하는 법률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며 사유재산을 사회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선 지금까지 이 법규가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다. 70여 년 간 문구로만 존재했던 이 법규가 마침내 법전을 벗어나 이달 26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운동에 처음으로 적용된다. 이날 부동산회사들이 보유한 임대주택 20만여 채를 국유화하는 문제를 두고 베를린 시민이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할 경우, 베를린시는 관련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 민간 임대주택을 매입해 싼값에 임대하는 법률이다. 베를린 시민이 이 운동에 나선 건 주택 임대료의 폭등 때문이다. 베를린의 주택 임대료는 2008년부터 10년 간 104% 올랐는데, 부동산회사들의 과도한 인상이 주 요인이다. 부동산회사의 임대료가 평균치보다 10%가량 높다. 다수 시민은 “주거는 상품이 아니다”며 주택의 공적 임대를 요구한다.
이런 시민운동은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사상에서 비롯됐다. 오스트리아 빈에선 시민의 62%가 공공성이 강한 임대주택인 ‘사회적 주택’에 산다. 1919년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뒤 사회적 주택을 늘려온 결과다. ‘주거의 공공성’은 유럽만의 가치가 아니다. 싱가포르의 최고 국정이념 역시 주거의 공공성이다. 그를 위해 토지를 국유화한 뒤 고품질 주택을 지어 싼값에 임대한다. 국유지 비율이 90%에 달해 지가 등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주거비 급증 우려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대선주자에게서 토지공개념 개헌이나 국토보유세 도입을 통한 불로소득 환수 등 재산권의 사회성 강화 주장이 나온다.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이자, 당면 최대 현안인 만큼 심도 깊은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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