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선거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국회의원 선거, 총선이 끝나면 보궐선거, 보궐선거가 끝나면 대통령 선거,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다시 지방선거, 보궐선거,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선거가 있다. 이렇게 선거가 많고 선거 때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공약이 만발하고 남발하는데 세상은 늘 그대로다. 누가 되든 별반 다르지가 않다. 선거철만 되면 장미들이 사방팔방 피어나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핏빛 얼룩만 남고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특히 교육정책은 어느 누가 되더라도 손도 대지 않는다. 교육개혁의 대강이라도 제시하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만한데도, 어떤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교육’ 문제는 표 받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총알받이가 되느니 그냥 모르쇠로 하는 걸 가장 상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임 후를 걱정해야 하는 대통령 단임제 아래서 교육개혁은 늘 뒷전으로 미뤄져 있다.

나는 영도에 산다. 내가 사는 영도구는 노인 인구 비율이 부산에서 가장 높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이다. 아이들은 드물고, 청소년들도 드물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좋은 학군을 찾아, 학군이 몰린 데를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좋은 학군에 살아야 내 자식이 좋은 대학(서열이 높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기 때문이다.

그렇게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결국 부동산 가격이 뛰고, 투기광풍이 분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울의 강남이 그랬고, 경기도 분당이 그랬고, 부산의 해운대가 그랬다.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뒤엎을 만한 정치세력이 한국엔 없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를 없애겠다는 공약은 여야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었고, 언제나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근본적 문제에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 30년을 내다보는 기획(교육개혁)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일, 모든 정책은 연관돼 있다.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임금차별 문제는 따로따로 떼놓고 해결할 수 있는 ‘뽑기’가 아니다. 부동산 투기광풍, 부동산 빈부격차, 임금 격차 문제를 교육개혁과 떼놓고 해결할 수는 없다. 학력차별을 없애는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면, 사람의 서열을 매기는 입시제도만 뜯어고쳐도, 우리는 서울에 굳이 살 까닭이 없다. 굳이 강남에, 분당에, 해운대에 살 이유가 없다. 영도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부산에서 하고 싶은 대학공부를 해도 되면 아파트 투기광풍 따위가 일어날 리가 없다. 굳이 공부도 하기 싫은데 대학에 갈 일도 없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까닭도 없다.

차별의 기원, 차별의 근원을 살피지 않고서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건 거짓이다. 차별이 존재하는데 민주주의가 작동할 리가 없다. 정의와 공정이 앉을 자리가 없다. 자, 우리가 사는 주변을 돌아보자. 뭐가 있는가? 특목고가 있는가? 과학고가 있는가? 대형학원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곳의 아파트는 계속 값이 오를 것이다. 학교가 없는가? 겨우 300명을 유지하는 일반고만 있는가? 있는 학교도 없애자고 하고 있는가? 이미 학교가 없어졌는가? 그곳의 아파트는 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없어서 학교가 없다고? 다 거짓말이다. 학교를 서울로 몰았기에, 학교를 강남으로, 분당으로, 해운대로 몰아넣었기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것이다. 학교에 갈 자식이 없는, 죽을 자리를 찾는 노인들만 남고 사람들이 떠난 것이다. 그 빈자리에 가난한 사람들이,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경쟁의 들러리가 된 사람들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곳에서는 서열 1위의 대학을 가는 아이들은 살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누군가 학력차별을 철폐하겠다고 하면, 대학서열을 없애겠다고 하면, 나는 그가 김일성, 스탈린의 할아버지라도 지지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정치권도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욕망의 사다리, 이 욕망의 피라미드 구조를 해체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육을 개혁하지 않는 그 모든 정치행위를 나는 그래서, 거짓, 아니 개짓이라 부른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