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인 정관을 자르고 잘린 두 끝을 꿰매는 것이 정관수술이다. 정자의 이동을 차단하는 수술인 셈이다. 정관수술 뒤 고환에 생성되는 정자들은 부정관에 머물러 있다가 효소 작용으로 체내에 자연 흡수되는 운명이다 보니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영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남성수술’이다. 산업화 시대 산아제한 정책을 편 정부는 젊은 기혼 남성을 상대로 이 수술을 권장했다. 인구폭발을 우려한 정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늘어나는 인구 증가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급기야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다자녀 가정이 대접받는 요즘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슬로건만으로는 산아제한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정부는 결국 정관수술을 하는 기혼 남성들에게 인센티브를 다양하게 내놓았다. 그중 예비군 훈련 소집 면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압권이었다. 그때 예비군 훈련을 받기 싫은 일부 남성은 “파이프를 막았다”는 말을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파이프’란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를 뜻하리다.

정관수술 권장 정책이 남긴 후유증은 심각했다. 예비군 훈련을 담당하는 전국 각지의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센터) 중대본부에는 정관수술을 한 남성을 둔 아내가 찾아와 “임신했는데 남편이 딴 남자와 바람이 났다”며 난리를 피운다는 웃픈 민원이 잇따랐다. ‘수술 뒤 잔여 정자가 배출될 수 있다’는 의학 상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정관수술 실적 올리기에 급급했던 게다. 힘겨웠던 시절 자녀 부양에 부담을 느낀 ‘생계형 정관수술’까지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 급격한 인구 감소의 시발점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요소수 대란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경유트럭 운전기사들 사이에서 ‘화물차 정관수술’로 알려진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 개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장치를 불법 개조하면 요소수 없이도 디젤 차량을 운행할 수 있지만, 1급 발암물질 등 오염물질이 최대 10배 넘게 배출된다. 많게는 30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고, 적발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래도 8000원 수준이던 요소수 10ℓ가 최고 15만 원 수준까지 올라간 현실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방치할 경우 후유증은 엄청나다. SCR을 불법 개조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은어인 ‘정관수술’이 산아제한시대 순간 위기를 모면하려는 정부의 어설픈 정책을 떠올리게 해 가슴이 아리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