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인간 심리를 꿰뚫어 보는 ‘영혼의 리얼리스트’였다. 특히 전쟁과 평화의 두 얼굴을 지닌 로마신화의 야누스 같은 심리적 모순을 파악하는 데 천재적 역량을 발휘했다. ‘자유의 역설’이 대표적이다. 그는 “인간이라는 불행한 존재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자유의 선물을 넘겨줄 대상을 빨리 찾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근심거리는 없다”고 했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다. 인간은 스스로 판단·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지녔지만, 고독과 불안을 감당하지 못해 자유를 포기하고 종교나 권력에 의지해 지배를 받으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유가 되레 구속을 부르는 셈이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이런 인식은 젊은 날 자유의 위기를 뼈저리게 경험한 데서 기인했다. ‘페트라셰프스키 클럽’ 반체제 활동으로 떠난 10년(1849~1859) 간의 시베리아 유배생활이 그것이다. 그 시절을 다룬 소설 ‘죽음의 집 기록’에서 그는 “돈은 주조된 자유였으며, 그래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고 썼다. 자본가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처럼 수입에 따라 자유의 질과 양이 달라지는 자본주의 사회를 보는 듯하다. 감옥 안이나 밖이나 자유는 돈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자유의 역설은 도스토옙스키가 타계한지 51년 후 독일에서 충격적으로 현실화됐다. 1932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치당이 37.2%의 득표율로 230석을 확보해 사회민주당(133석)을 제치고 집권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에 대해 “인간은 안정감을 주던 관계들을 잃으면 자유는 참을 수 없는 부담이 되고, 외부 세계에 대한 복종으로 도피하려는 강력한 성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자유는 쟁취하거나 지키기는 힘든 반면 잃기는 쉽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11월 11일)을 맞아 그가 갈파한 자유의 역설에 다시금 눈길이 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전 국민 방역지원금 공약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자영업자 피해 전액 보상으로 맞대응하는 등 20대 대선 선거전이 ‘돈 뿌리기’ 포퓰리즘 경쟁으로 흐르면서 유권자의 오판이 우려되어서다. 포퓰리즘에 현혹돼 정책의 우열을 가리는 ‘이성의 자유’를 포기하는 순간 퇴보의 위기가 초래될지도 모른다. 독일의 비극에서 보듯 그 상처는 너무 크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