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방자치회관이라는 곳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2019년 건립됐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의 여러 광역시·도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일한다. 특이하게도 입구 부근에는 다목적 승용차(SUV) 한 대가 전시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때 이용했던 자동차다. 김해에 거주하는 차량 소유자가 회관 개관 소식을 듣고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지방분권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회관의 도로변 쪽 벽에는 게시판이 있다. 눈여겨 보면 각 시·도가 현재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뭔지를 알 수 있다. 대구는 ‘2022년 세계 가스총회’를 홍보한다. 대전은 ‘2022년 세계지방정부연합총회’, 전북은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2023년)가 각각 자신의 지역에서 열린다는 점을 알린다. 강원도는 ‘2024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을 담은 홍보물을 걸어놨다. 다른 쪽에는 충남·충북·대전·세종 등 충청권 지자체 4곳이 공동으로 ‘2027년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 개최권을 따오겠다는 각오를 담은 큼직한 현수막도 있다. 부산은? 당연히 ‘2030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각 지자체가 지역 발전을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굵직한 국제행사를 유치하면 도시의 자부심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기반시설 확충 등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나 국제 인지도 제고 효과도 크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지자체의 이 같은 움직임은 날로 가속화되는 지방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국제행사와 관련해 대구나 대전 전북 강원은 이미 개최가 확정됐으니 조금은 느긋할 듯하다. 문제는 부산이다.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워낙 많다. 우선 유치 신청을 한 경쟁 도시 중 쉽게 따돌릴 만한 상대가 없다. 다들 만만찮은 내공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모스크바나 로마는 부산보다 국제 인지도가 높다. 리야드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수도답게 막강한 자금 동원력이 장점이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오데세가 약체로 분류되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안다.
그렇지만 세계박람회 유치전은 이미 벌어진 판이니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다.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주관하는 각 도시의 계획 발표회는 오는 12월로 잡혀 있다. 내년 9월께는 유치 희망도시 실사가 기다리고 있다. 회원국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 역시 쉬운 게 아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시는 시대로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형편이 됐다.
외부 여건과는 별도로 내부 역량 결집도 유치전 과정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절차다. BIE는 행사 개최지를 뽑을 때 그 도시 구성원들의 호응도와 지지 여부 등도 꼼꼼히 살핀다. 당연히 해당 지역 주민들의 행사 유치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지가 당락 여부를 결정하는 열쇠가 될 수밖에 없다.그런데 최근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가 시민 700명을 대상을 설문조사를 했더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부산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비율은 응답자의 54.9%에 그쳤다. 또 열에 일곱 명(72%)은 행사가 열릴 곳이 부산항 북항 재개발 지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시가 5년 전부터 유치 계획을 세우고 홍보활동에 들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맥 빠지게 만드는 반응이다. BIE의 개최 도시 선정 기준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그나마 응답자의 79.1%가 부산에서 엑스포가 열리는 것을 찬성한다고 했으니 다소나마 위안이 되기는 한다.
세계박람회 개최지 최종 결정 시기는 2023년 하반기다. 눈 깜박할 할 사이에 지나갈 시간이다. 자칫하면 아차 하는 순간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시는 마땅히 외부 유치전 못지않게 내부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진행했던 홍보전략이 시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면 과감하게 틀을 바꾸는 게 옳다. 많은 사람이 시의 구상을 외면했다면 무엇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세계박람회 유치는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부산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24시간 가동이 가능한 관문공항과 선박이 쉼 없이 드나드는 항만, 지역 간을 신속하게 이어주는 철도가 결합된 ‘트라이포트(Tri-Port) 구상’이 앞당겨지려면 행사 개최는 필수다. 이 명제 앞에서는 이견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의 마음을 파악하고 총의를 모으는 일이다. 이런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세계박람회는 결국 ‘그들만의 잔치’에 그치고 말 터다.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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