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과 11월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다. 지난 18일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kt가 두산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을 본 롯데 팬들의 가슴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제10 구단으로 출범한 kt는 8년 만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더구나 kt에는 롯데 출신 선수들이 즐비했다. 4차전에서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신본기를 볼 때 착잡했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저렇게 해야 하는데… kt뿐만 아니라 제9 구단으로 탄생한 NC도 지난해 창단 9년 만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의 위업을 이뤘다. 프로야구 막내 구단 2개 팀이 2년 연속으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동시에 제패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롯데와 무척이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롯데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이름을 그대로 지킨 ‘유이’한 팀이다. 그런 전통을 자랑하지만 출범 후 39년 동안 한 번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는 불명예도 가지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도 무려 29년 전이다. 요즘 대세인 MZ 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인류가 달에 착륙한 것과 같이 굉장히 낯선 모습인 셈이다.

그리고 한 명의 이름이 롯데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바로 최동원이다. 올해로 그가 롯데 팬들을 떠난 지 10년이 됐다. 최근 최동원이 전 세계 야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피칭을 했던 1984년 한국시리즈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롯데 팬뿐만 아니라 상대팀 팬마저 경외심을 갖게 만든 전설적인 그 한 마디, “마, 함 해보입시다”는 역설적이게도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들게 한다.

최동원이 살아 있을 때, 두 번 인터뷰 했었다. 그는 누구보다 롯데와 롯데 팬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롯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그는 롯데 감독으로 선임되면, 함께 호흡을 맞출 코칭스태프를 이미 구상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밝혔다. 하지만 최동원의 구상은 끝내 현실이 되지 않았다. 롯데 구단은 최동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년 후 다시 만난 최동원은 롯데 감독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마도 롯데가 그를 부르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대신 당시 창단 움직임이 있었던 NC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고향 팬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했다. 그만큼 최동원은 고향 팬들을 사랑했다.

최동원이 고향 팀을 그리워하는 동안 롯데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한때 ‘8888577’이란 암호가 통하던 시기가 있었다. 롯데 팬들은 이 숫자의 의미를 안다. 이 기간 롯데는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은퇴한 한 선수는 “관중이 너무 없어 3루 쪽 스탠드에 앉은 팬이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이야기가 다 들렸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그 시기 최소관중 기록은 69명이었고 워낙 관중이 없어 스탠드에서 자전거를 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제 시선을 내년으로 돌려보자. 2022년은 롯데에 중요한 해다. 최동원의 뒤를 잇는 롯데의 또 다른 전설이 마무리를 준비한다. 이대호다. 공교롭게도 이대호는 프로야구가 탄생한 1982년에 태어났다. 프로야구와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대호는 일본과 미국에서 뛴 시기를 제외하고 줄곧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유일무이한 타격 7관왕과 전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9경기 연속 홈런 등 화려한 역사를 썼지만 챔피언 반지를 끼지 못했다. 오히려 롯데가 아니라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재팬시리즈 우승을 맛봤고 한국인 최초로 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그런 이대호가 올해 초 롯데와 계약하면서 “2년 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은퇴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이대호가 소망을 이룰 시간은 내년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다. 전설적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 시절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한 1997-1998시즌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ESPN은 조던의 불스를 독점 취재할 수 있는 허가를 얻어 시즌 내내 선수단을 밀착 촬영했다.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500시간짜리 영상이 10부작으로 농구팬들과 만났다. ‘더 라스트 댄스’는 조던과 불스 왕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전 세계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롯데 팬들은 내년 시즌 이대호의 라스트 댄스를 볼 수 있을까. 프로야구 출범 40년, 롯데 창단 40년 그리고 이대호가 은퇴하는 시즌이 2022년이다. 이 정도면 조던의 라스트 댄스보다 훨씬 더 의미도, 가치도 크다. 그런 엄청난 시즌을 기록하는 것은 롯데를 넘어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롯데가 우승을 차지한다면 더 극적인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신문국 에디터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