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도’라는 말은 ‘해양’과 ‘수도’의 합성어이다. ‘해양’이 공간적·산업적 범위를 가리키고 ‘수도’는 한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말한다. ‘해양수도’라는 용어는 부산에서 주로 사용된다. 1995년 부산도시기본계획에서 ‘해양수도 부산’을 도시 목표로 설정한 이후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1970년대 항구도시로 시작해 ‘항만도시’, ‘항만물류도시’, ‘해양물류중심도시’, ‘해양도시’를 거쳐 최근에는 ‘동북아 해양수도’, ‘해양특별시’라는 용어까지 나오고 있다. 용어야 어떻든 해양에 관해서는 부산이 모든 것의 중심이며, 서울공화국에 대한 대립적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해양수도 논의가 정부의 ‘메가시티’ 정책을 맞아 새 국면을 맞았다.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현실에서 전국을 4곳의 ‘초광역권’이란 새로운 단위로 묶어 지원키로 했다. 초광역권을 만들면 미래산업 육성과 공공기관 유치, 공항·항만 등 개발, 관광 활성화 등에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울경 메가시티 논의가 가장 활발하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가속화됨에 따라 해양수도 부산에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기회의 창이 앞으로 확대될 지, 아니면 다시 닫힐지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그렇다면 부산의 현재 상황은 해양수도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물적 인프라는 꽤 좋은 편이다. 해운항만과 수산, 해양에 대한 다수의 대학이 있고, 국가 연구기관들이 포진해 있다. 산업적 측면도 좋다. 세계적 수준의 부산항이 있고, 국제수산물 도매시장, 수산가공선진화단지, 선박수리조선단지 등이 있다. 부산이 만들어낸 해양 산출물(output)도 매우 좋은 성적이다. 부산항은 컨테이너 세계 7위, 환적화물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전국의 컨테이너 화물 85%, 수출화물 63.4%, 수입화물 68.2%, 환적화물 94.1%를 처리했다. 수입수산물 76%, 수출수산물 75%, 수산가공품 22%를 처리함으로써 수산업의 메카임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 부가가치 등 최종 성과(outcome)는 좋지 않다. 부산항 항만연관산업의 부가가치는 싱가포르항과 상하이항의 4분의 1에 그쳤고,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비교하면 15%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다. 항만산업도 하역 및 지원서비스가 60% 이상을 차지한 반면 부가가치를 많이 내는 항만관련 산업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부산은 국내 해양 관련 기관의 70% 정도가 밀집된 세계 수준의 해양 클러스터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핵심 원인으로 해양자치권의 부재가 지적된다. 메가시티 논의가 본격화되고 대선 국면이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해양자치권을 부산에 부여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해양수도와 메가시티 등의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서 국론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최적화 해법을 말한다. 북항 재개발구역 내 트램사업과 관련한 해양수산부와 부산지역의 소모적 논쟁에서 ‘시민’을 위한 정치공학이 사전에 작동했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비용은 없었을 것이다.
메가시티 논의를 통해 ‘서울특별시’와 ‘지방보통시’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의 성공적 사례를 통해 부산을 해양특별자치시로 지정하고, 지방 특성에 맞는 문화특별자치시, 산업특별자치시 등을 타 시도로 확대해야 한다. 부산시의 조직 정책 예산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한편 ‘해양패권주의’라는 이기주의적 시각을 ‘부산을 활용한 해양강국 전략’이라는 이타주의적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해양수산부도 해양자치에 필요한 권한을 부산시에 대거 이양하고, 단계적으로 인천시 등 전국 해양도시로 확대해야 한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부산해양수산청 권한의 단계적 이전 및 동·서·남해안 등 광역청으로 전면 개편, 부산항만공사에 대한 자치권 부여 등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정치다. 해양수도 구호를 외치면서 해양특별시에는 관심이 없는 지역 국회의원. 지방분권을 강조하면서도 ‘해양자치’와 ‘해양수도’를 공약에서 제외하고 있는 여야 대선 후보. 부울경 주민을 위한 정치공학이 발휘돼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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