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은 ‘혁명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변화의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그중 사람 간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비대면 세상이 일상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가장 도드라진다. 벌써 3년차로 접어든다. 그래도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덜한 청정지역이라면 선뜻 나설 만하다.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을 때는 트레킹 코스 선정에 각별한 신경을 쏟는다.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부산 갈맷길이 ‘비대면 안심 관광 및 걷기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는 게 당연하다.

2013년부터 부산시 갈맷길 완보인증센터를 운용 중인 (사)걷고싶은부산의 통계에 따르면 총 연장 302.5km에 이르는 갈맷길의 완주자 누적 인원이 3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난 17일을 기준으로 완보자 누적 인원은 총 3068명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지난해 1월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뒤 갈맷길 완주자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고 한다. 2018년과 2019년 연간 완주자 수는 각각 161명, 327명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1년차인 지난해에는 569명을 기록했는데, 2년차인 올해는 1106명으로 급증했다. 21곳으로 조성된 갈맷길 구간별 걷기에 나선 인원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갈맷길 완보자의 연령대가 골고루 분포되고 있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된다. 올해도 50, 60대가 700여 명으로 전체 완주자의 60% 이상을 차지했지만,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층 완보자 수는 전례 없이 늘어난 것이 눈길을 끌고 있다. 10대는 지난해 2명에서 올해 20명으로, 20대는 14명에서 38명으로, 30대는 36명에서 68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40대 역시 지난해 71명에서 올해 139명으로 늘었다. 이른바 ‘역병시대’에 갈맷길 가치가 드높아진 느낌이다.

갈맷길은 부산을 거론할 경우 바로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갈매기’와 ‘길’의 이미지가 한데 묶인 상징어다. 부산시가 2009년 정부에서 지원한 희망근로 사업 예산을 바탕으로 조성한 이 길은 바다와 강, 산, 온천을 연결하는 탐방로로 탈바꿈했다. 해안길(6곳) 강변길(3곳) 숲길(8곳) 도심길(4곳) 등 구간마다 부산의 지역적 특성이 제대로 드러난다. 세계적으로도 남다른 특색을 지닌 갈맷길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린웨이로 우뚝 섰다. 새해에는 누구나 찾아 꺼리김 없이 접촉하고 어울리는 명품 길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간절하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