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BTS,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K-문화의 상승세가 무섭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인들의 SNS를 뜨겁게 달굴 만큼 안 본 사람을 찾기 힘들었고, 심지어 학교에서도 달고나 냄새가 교무실 앞 복도를 가득 채웠다. 코로나19의 장기화가 가져온 관계의 공허함을 K-문화가 새로운 방식의 교류와 소통으로 채워준 것이다.
문화(culture)가 무엇이기에 이런 힘이 있는 걸까? 신문의 문화면은 미술 책 공연 연예 등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문화가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용어처럼 보인다. 물론 문화는 단순한 것이 아니며, 정의를 내리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교육학자 제임스 뱅크스 교수는 문화를 말할 때는 산물이나 도구를 넘어 공동체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사용하고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문화는 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 문화에 속한 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종의 패러다임이다. K-문화의 흥행 또한 그 속에 숨겨진 한국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대한 공감의 결과인 셈이다.
과학의 세계에도 문화가 있다. 학생들에게 과학 문화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과학의 대중화’에서 그 답을 찾는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진입 후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인식을 점점 더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과학의 대중화’는 과학 지식을 지식인뿐만 아니라 대중 전체가 갖추어야 함을 의미하는 개념이므로, 과학 문화의 일부로 설명될 수는 있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과학 문화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 공동체의 행동이나 신념뿐만 아니라 과학과 과학의 작동 방식에 대한 과학 공동체의 신념과 태도, 행동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과학은 무엇인지, 과학 지식은 어떻게 생성되는지, 과학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과학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관심을 가지며 문화로서 과학(science as culture)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 문화에 대한 관심은 왜 필요한 것일까? 개인적 차원에서는 과학의 대중화에 있다. 왜냐하면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교환되는 ‘유사과학’이나 ‘가짜뉴스’와 같은 거짓 정보들을 구별하기 위해 과거 과학자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과학 지식이 이제는 대중들에게도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매년 10월만 되면 우리나라가 왜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하는지 비판적인 글과 대책 마련을 위한 보고서들이 등장하는데, 공통적으로 기초과학연구와 국제협력·공동연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신진 연구자들이 사제지간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고의 양식이나 과학 공동체의 규범을 배울 수 있는 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 문화에 대한 관심은 현재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해줄 수 있다.
물론 과학을 문화로서 접근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를 교육에 접목시킨다면 과학 교육의 목표를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과학을 실천하는 데 두어야 한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능이라는 입시 문턱으로 과학교육의 방식이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학생들의 과목 편중 현상 또한 강하게 나타나 다양한 관점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이를 통한 실생활에서의 문제해결 경험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산의 경우 국립부산과학관이나 부산과학체험관, 국립해양박물관 등 지역사회에서 과학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물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만, 여전히 전시관이나 박물관이라는 인식이 강해 그 공간에서 과학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보지는 않는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이 본래 철학에 그 기원을 두었던 것처럼, 과학은 사회 정치 예술 종교 등 일상의 모든 분야에 얽혀 우리 삶의 곳곳에 스며있다. 더 늦기 전에 나부터 과학을 문화로서 접근해보는 것은 어떨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과학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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