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동남권의 2020년 GRDP(지역 내 총생산) 증가율은 전국평균(-0.8%)을 크게 밑도는 -4.5%로 나타났다. 각 연구기관의 2021년 성장률 추정치나 올해 전망치 또한 전국 평균을 하회할 거라는 전망이 많은 걸 보면 전국평균보다 낮은 성장이 2013년 이후 10년째 이어질 것 같다. 1985년 전국 대비 18.5%를 기록했던 동남권의 GRDP 비중은 1990년 17.6%, 2000년 17.0%, 2010년 16.4%, 급기야 2020년 14.1%까지 하락했다.
생산 투자 소득 소비 어느 것 하나 전국 평균을 넘지 못하다 보니 무엇보다 사람이 떠나고 있다. 인구 경제 할 것 없이 주요 지표의 하락 폭이 가장 큰 지역이 동남권이다. 2016년 이후 생산가능 인구, 청년인구의 지역 이탈은 심각한 지경이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지역균형발전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YS 정부는 당시 파격적인 ‘수도권 공장총량제’와 ‘과밀부담금제’를 실시했고, DJ 정부는 지역별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지역산업 진흥사업’, 참여정부는 ‘혁신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도 ‘5+2 광역경제권’ 조성과 ‘국민행복·지역희망 프로젝트’를 내걸었고,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계승을 표방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인 듯 수도권 집중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동안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실패했다.
무엇보다 역대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구색 맞춤용 공약만 내걸었지 수도권 집중을 극복할 정도로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물론 지역균형발전을 견인하지 못한 지역, 세계적인 제조업 침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혁신 역량을 키우지 못한 기업들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지난 30년 지역균형발전 정책 추진의 역사가 남긴 교훈이 있다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힘들었지만 지역균형 발전에 관한 한 동남권의 앞날은 더더욱 험난해 보인다. 미래 성장 동력이 수도권에 집중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K-반도체, K-배터리, K-바이오 등의 이름으로 4차 산업혁명 생태계가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수도권, 충청권에 조성되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을 지역으로 분산배치하지 않는 한 지역의 미래는 없다.
심지어 전국 미술관 40% 이상과 문화 콘텐츠 산업 매출액 86%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음에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건희 미술관조차 후보지가 서울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합의해왔던 최소한의 상징적 노력마저 실종된 느낌이다.
유권자 과반수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미 2020년 수도권 유권자가 50.1%를 넘어섰다. 대선을 앞두고 눈길 끄는 지역 정책이 없는 것도, 세대 젠더 등 다른 이슈에 밀려버린 것도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유권자 비중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역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권의 흡인력보다 더 강력한 지역균형발전 정책뿐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공기업과 민간 대기업, 미래성장 동력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유인, 독려, 지도하는 수밖에 없다. 경제 논리나 자율에 맡기자는 것은 아예 작정하고 지역소멸을 가속화시키자는 억지에 불과하다.
대선 후보들에게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지역 소멸을 막을 대책이 있는지, 미래 성장 동력을 지역에 어떻게 배치할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강도 높게 묻고 검증해야 한다.
과반을 넘긴 수도권 유권자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지역의 요구를 거들떠보는 것도, 알맹이 없는 구색 맞춤용이나마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내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지역의 투표기준, 보팅 키(Voting key)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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