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부의 불통행정이 점입가경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27일 처리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부지 내에 저장한다는 내용의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확정했다. 원전 지역의 반대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한 결과다. 지난달 17일에는 지역민과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계획 통과를 위한 ‘깜깜이 토론회’를 열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원전 지역민에게 ‘위민(爲民)’ ‘민본(民本)’은 딴 세상 얘기다.

산업부가 공개한 ‘2차 계획 의견 처리 결과’에 따르면, 행정예고 기간이었던 지난달 7~21일 원전 지역에서 48건의 의견이 제출됐다. 산업부의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을 비판하거나 2차 계획 재수립을 촉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부는 지난 40년 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마련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영구처분시설을 100년 뒤에 지을지 300년 뒤에 지을지 불투명하기에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 명문화’는 곧 원전 지역이 핵폐기장화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의견이다. 지역민은 이런 이유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을 위한 공론화 작업을 다시 추진하길 원한다.

그런데 산업부의 답변은 무성의하기 이를 데 없다. “(2015년 활동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의견을 고려해 마련했다”는 똑같은 내용의 답변을 각 지역에 보냈다. 재검토위의 공론화는 실패로 끝났고, 당시 재검토위원장이 그 결과를 거울 삼아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공론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권고한 상태다. 그런 마당에 재검토위가 2차 계획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결론을 지으려 하니 원전 지역민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산업부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며 현 실태를 유지하려 한다. 이래선 해결은커녕 갈등만 키울 따름이다. 천적이 나타나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타조와 뭐가 다른가.

해법은 하나뿐이다. 지속적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중지를 모으는 정공법 외에 달리 해법이 있을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유럽연합(EU)도 최근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법률 초안에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자금과 부지가 있는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인류 문명의 숙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의 화두로 제기해 해법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국 6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22 탈핵대선연대’가 대선 후보들에게 사용후핵연료 처리 해법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정부 계획에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후보들은 소신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일부 후보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등 친원전을 주장한다. 그러려면 먼저 사용후핵연료 처리 해법부터 내놓아야 한다. 그리 하지 않은 친원전 공약은 화장실 없는 집을 지으려는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