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에 동원된 말이 일주일 만에 죽어 동물학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촬영 당시 제작진이 말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뜨리면서 말이 고꾸라졌다고 한다. 제작진은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생각했겠으나 시청자들은 잔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갑작스럽게 넘어진 말은 목이 꺾여 촬영 후 7일 만에 죽었다. 제작진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빚어낸 참사다.

말의 지능지수(IQ)는 70~80으로 개와 비슷하다고 한다. 말은 고대부터 교통수단, 우유와 고기를 주는 가축으로 인간에게 헌신하는 동물이다. 교감능력도 뛰어나 심리치료에 활용된다. 이런 말의 뒷발을 묶고 방심하는 사이에 당겨 고꾸라지게 했다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생명체를 촬영장에서 쓰이는 소품처럼 취급한 KBS 제작진의 행태에 쏟아지는 비난은 마땅하다.

동물권 단체에 따르면 와이어를 사용해 말을 넘어뜨리는 촬영 기법은 미국에서는 1939년 이후 금기화됐다. 1939년 서부 영화 ‘제시 제임스’에서 말이 주인공을 따라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 때문이었다. 당시 약 20ｍ 높이에서 강제로 떨어진 말은 익사했다. 미국의 대표 동물보호단체인 미국인도주의협회(AHA)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후 할리우드 촬영장의 동물 처우는 AHA에서 모니터링한다. 최근에는 말 마네킹 위의 배우를 촬영한 뒤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KBS 제작진은 스턴트맨과 말을 투입해 촬영하다 이 같은 사달을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드라마 연재를 중지하고 처벌해 달라’는 청원들이 올라왔다. 정치권도 나서 촬영장의 동물권 보호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물권 단체 ‘카라’는 제작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 씨도 “동물 출연 관련 미디어 방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거센 비판에 KBS 측은 2주간 드라마 결방을 결정했으나 후폭풍이 거세다.

얼마 전 영국 정부가 문어와 게, 바닷가재를 고통을 느끼는 동물로 인정하고 동물복지법을 적용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연체동물과 갑각류를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거나 생식을 해 고통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번 KBS 사태가 촬영장에서의 동물권 보호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