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겨울을 이야기할 날씨가 됐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 입은 모습이 계절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도시 부산. 사람들은 힘들다면서도 각자의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더욱 멋있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세상 제멋에 산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당나라의 선승(禪僧) 임제의현(臨濟義玄)은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을 이야기했다. 이는 ‘머무르는 곳에서 주인이 되면 그 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라는 뜻이다.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신의 주인이 되라는 말로 결국 어디에서든지 최선을 다하고 또한 그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힘을 예전에 러시아로 발레 유학을 다녀온 지인과 문화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지인은 길에서 장미꽃 파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일화를 들려줬다. 매일 지하철 입구에서 행인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팔면서 살아가는 할머니가 연말이 되면 볼쇼이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단다. 할머니는 이 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옷장에서 가장 아끼는 옷을 꺼내 입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으로 발레를 보러 갔다는 것이다. 필자는 발레공연을 보러 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봤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함이 온 마음과 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평소에는 길에서 장미를 파는 할머니의 성실함과 발레를 보러 공연장으로 향할 때의 행복한 모습, 평소와는 다른 세상을 즐기는 힘은 할머니가 머무르는 그 어디에서든지 주인의 힘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일 것이다.

지금 부산엔 몇 개의 공공 공연장이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부산콘서트홀과 낙동아트센터는 관객을 맞이하기 위한 마무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노동자가 흘린 땀의 결과물이 드러나고 있는 현장을 필자는 처음부터 지켜봤다. 문득 공사가 끝나고 난 뒤 그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공연장의 내·외부의 모습을 본 현장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필자는 2022년 6월 3일 오후 부산오페라하우스 공사 현장에서 ‘건설 관계자와 함께하는 현장 오페라 강연’을 했다. 큰 회의실 같은 컨테이너박스에서 나의 강연과 더불어 두 명의 성악가가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기도 했다. 필자는 강연 시작 전 이분들을 그냥 쉬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무슨 강연과 음악이야 투정 섞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는 선입견에 불과했다.

다양한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진지함은 쉽게 만나보지 못한 강연에 대한 집중이었다. 이날 강연과 더불어 들려준 성악가들의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 이들의 모습은 어느 사이 행복한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예술가들은 누구를 위해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일까? 예술이 있어야 하는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강연이 끝나갈 즈음 필자는 현장에 있던 공연장 관계자에게 시설물이 완공되면 첫 연주를 이곳 노동자들을 초청해 열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관계자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제 그 실행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모두가 예술가라고 이야기한 요셉 보이스의 철학은 사람과 더불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시작이자 끝이다. 관객이 찾지 않는 공연장의 불빛은 유령의 집이 될 것이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듯 관객들을 귀하게 여기며,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극장 관계자는 연구해야 한다. 하루를 수고한 도시인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 행복한 책 읽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를 즐길 수 있는 도시를 모두가 꿈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노동자들이 놓치고 있다면 이 문턱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법은 먼저 알고 있으며 이해하는 쪽이 찾아가 해결해야 한다. 2022년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땀을 흘리며 일하던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과 한 약속 실행이 ‘부산이 좋다’로 이어져 공연 활성화를 위한 관객 개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