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권을 쥔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여야 공방이 거세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재판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여당과 이를 일축하는 야당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8년 전 황교안 권한대행 사례를 들며 “궐위가 아니라 직무정지 시에는 헌재 탄핵안 인용 결정 전까지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곧바로 “탄핵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위해 9인 체제 심판을 진행해야 한다”며 “국회 추천 몫 3인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관 후보는 국민의힘이 1명, 민주당이 2명을 추천했으나 인사청문회 일정은 못 잡고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형식 헌법재판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정정미·이미선·김형두·김복형 헌법재판관. 연합뉴스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황교안 대행체제에서도 똑같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도중 재판관 1명이 퇴임했고, 재판이 길어지면 추가로 1명 더 퇴임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황 대행에게 권한이 있다”며 조속한 임명을 촉구한 반면,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대행에게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불리에 따라 공수가 바뀌었을 뿐 여야는 지금과 180도 다른 말을 했던 셈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 범위는 현행법에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의 해석은 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에 헌법재판관 임명도 들어있다는 게 정설이다. 황 대행은 탄핵 심판 도중 공석이 된 대통령 몫 재판관은 임명하지 않은 채 차기 정부로 넘겼고, 탄핵 결정 이후 공석이 된 대법원장 몫 재판관 임명권은 행사했다. 대통령 몫 재판관 임명권 미행사는 6년 임기의 헌법재판관을 대행이 결정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황 대행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다. 현재 임명이 임박한 헌법재판관 3명은 모두 국회 추천 몫이어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은 수동적 결재에 그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9인 체제가 정상인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월 17일 재판관 3명이 퇴임한 이후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 상황을 두 달 넘게 방치하다 대통령 탄핵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뒤늦게 절차를 밟는 민주당이나, 전례를 교묘하게 비틀어 6인 체제를 유지하려는 국민의힘이나 의도나 속내는 뻔하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 재판관 임명과 관련해서는 여당 논리에 개연성이 적다. 그렇다고 재판 꼼수가 민주당이라고 덜하지 않다. 이재명 대표의 위증 및 선거법 재판을 탄핵과 조기 대선 이후로 미루려는 지연 작전이 시작됐다고 한다. 여당을 향한 여론의 화살이 언제든 민주당 쪽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헌재는 주심 결정, 윤 대통령 측 답변서 요청, 첫 변론기일 확정 등 속도를 붙이고 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정치권도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