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박상진 회장이 산은 부산 이전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5일 사내게시판에 “산업은행 이전은 지난 정권의 불가능한 약속이었다”며 “금융중심지 서울에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 공공기관 대상에서 해제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2027년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내년 이전 계획을 확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을 밝혔는데 정작 대상인 산업은행은 서울에 잔류시키는 모양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17일 입장문을 내 “산은 이전 백지화와 동남권산업투자공사 설립은 대통령 공약 파기이자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9부 능선까지 도달했다고 여겨온 산은 이전이다. 정권에 따라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 누가 정부 정책을 신뢰하겠나.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1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은 본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시장 입장문은 상당히 강경하다. 그는 “산은 이전 백지화는 부산 시민의 오랜 여망을 팽개치는 처사다. 사탕발림으로 지역 발전의 근원적 해결책을 외면하는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발전 정책에 뿌리를 둔다. 민주당도 함께 추진한 정책이다. 박 시장은 이어 “정부의 투자공사 추진은 밥상을 못 차리겠으니 떡 하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이냐”며 반문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동남권산업투자공사 대신 산업은행 이전을 원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산시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이다.

정부와 여당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논리가 궁색하다. 쉬운 일이 아닌데 전 정권이 불가능한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본점 위치를 정한 산업은행법만 개정하면 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산은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로 확정, 이듬해 5월 지정·고시했다. 합법적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왜 이전에 반대하는지 합당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더해 한다는 소리가 노조와 주민이 반대해서란다. 이전 공공기관 치고 노조 등이 반발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런 반발에도 추진한 것은 균형발전 때문이었다. 항간에는 산업은행 본점 소재지가 김민석 국무총리 지역구(영등포구)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돈다. 정부·여당이 반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니 이런 말도 나오는 것이다. 김 총리는 2023년 국가 금융 경쟁력을 키우려면 산업은행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수도권 중심주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논리면 공공기관 이전은 해선 안 될 정책이다.

정책을 뒤집으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으니 못 밝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가 정책이 개인 또는 정당 이익 때문에 파기되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철회 이유를 시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전 백지화는 시민이 납득할 때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