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드디어 타결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대미 관세 인하와 연계된 3500억 달러(500조 원)의 투자 방식 등 핵심 분야에 합의했다. 제일 큰 현안이었던 3500억 달러 투자는 현금 투자(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1500억 달러)으로 구성됐다. 연간 투자 상한액을 외환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200억 달러로 정하고, 수익 배분과 원금 회수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안보 협상에선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연료 공급,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등의 필요성에 양국이 공감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안보 관련 합의는 거의 타결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관세 협상은 진전이 쉽지 않아 장기전으로 돌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해서 “협상이 거의 타결 직전”이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이 대통령은 회담 직전까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합의 지연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인내심을 부탁드린다”며 장기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큰 틀에서의 한미 통상 합의 이후 무려 23차례에 걸친 양국 장관급 회담과 수많은 실무 회담에도 불구하고 3500억 달러 투자금의 투자 방식과 수익 배분 구조에 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톱다운 방식 논의에 힘입어 한국은 산을 하나 넘게 됐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임에도 대미 수출품에 대해 상호관세를 15%나 적용받고,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대해서는 세부 협상 타결 미비를 이유로 지금까지 계속 25%가 적용돼 왔다.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실제로 심각한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 부울경 지역의 자동차 부품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협상 타결로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여전히 부과되던 품목별 관세 25%는 일본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은 15%로 인하될 전망이다. 안보 분야 역시 원자력 발전소 폐쇄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등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건 획기적이다.

이번 관세와 안보 협상 타결로 이재명 정부 앞에 놓여 있던 큰 난제는 하나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관모형을 선물하고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 등 회담 성공을 위해 애를 쓴 보람이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통해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던 방위비 분담금,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근로자 비자 문제 등은 아직 해결됐다고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위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칭하고 회담 개최를 전제로 제재 해제를 언급하는 등 불안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정상회담에 공동선언문이나 기자회견이 없었던 건 아직 세부적으로 조율할 사안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고 최종 단계까지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