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덮을 개(艹-10) 널 관(木-8) 일 사(亅-7) 정할 정(宀-5)
사람이 일생을 살고 저 세상으로 갈 때 생전의 한 일이 평가받기를 원한다.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도 행적이 덮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 지난 번 나쁜 이름 遺臭萬年(유취만년, 7월 13일 자)을 말할 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좋은 이름 流芳百世(유방백세)가 냄새나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도 그 사람의 사후라야 가능하다는 말이 이 성어다. 시체를 관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蓋棺)에야 일을 결정할 수 있다(事定)는 뜻으로, 사람이 죽은 후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됨을 이르는 말이다.
詩聖(시성)으로 불리는 唐(당)나라 杜甫(두보)의 시구에서 나온 이 말은 人事蓋棺定(인사개관정)으로도 쓰인다. 두보가 四川省(사천성)의 동쪽 夔州(기주, 夔는 조심할 기)라는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고 있을 때다. 마침 그곳엔 친구의 아들 蘇徯(소혜, 徯는 샛길 혜)가 실의에 찬 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한 편의 시를 지어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 해도 언젠가는 쓰일 날이 올 것이라는 뜻을 담아 소혜를 격려했다. '君不見 簡蘇徯(군불견 간소혜)'란 시의 해당 부분을 보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연못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앞서 꺾여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 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쓰이게 되고, 한 섬의 오래된 물은 교룡을 숨기기도 한다. 장부는 관 뚜껑을 덮어야 비로소 일이 결정된다(君不見道邊廢棄池 君不見前者摧折桐 百年死樹中琴瑟 一斛舊水藏蛟龍 丈夫蓋棺事始定/ 군불견도변폐기지 군불견전자최절동 백년사수중금슬 일곡구수장교룡 장부개관사시정).' 摧는 꺾을 최, 斛은 말 곡. 여기에 힘입어 친구의 아들은 심기일전, 호남 땅에서 說客(세객)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개국공신 鄭道傳(정도전)이 역적 누명을 벗는 데 500년이 걸렸듯 사후 몇 백 년이 지나 역사적 평가가 새롭게 되는 사람도 있고 죽음으로써 누명이 덮여 버리기도 한다. 이 덮인 이름이 언젠가는 다시 밝혀지기도 하겠지만…. 최근 후계와 관련, 흙탕물을 일으키며 아들 간 싸움이 벌어졌던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주는 눈을 감기 전 업적이 급전직하할 위기에 처했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성공한 자금으로 모국에 투자, 재계 5위까지 끌어올린 신화적 창업이 후진적 지배구조와 승계를 뒤늦게 해 분란을 자초한 결과다. 역시 평가는 사후까지 기다려 봐야 하는 법이다. 언론인·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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