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백(白-1)골짜기 곡(谷-0)임금 왕(玉-0)

‘죽간본’ 2장으로 넘어간다. 먼저 2-1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江海所以爲百谷王, 以其能爲百谷下, 是以能爲百谷王.”(강해소이위백곡왕, 이기능위백곡하, 시이능위백곡왕)

“강과 바다가 온 골짜기의 왕이 되는 까닭은 기꺼이 온 골짜기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니, 이런 까닭에 온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다.”

江(강)은 본디 중국의 중앙부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長江(장강) 곧 揚子江(양자강)을 가리키는 글자다. 후대에 보통명사로서 강 일반을 가리키는 글자로 쓰였다.

이 글자로 보건대, 노자는 황하보다 장강에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학자는 노자를 楚(초)나라 땅 출신으로 보고 있다. 海(해)는 중국 동쪽의 바다를 가리킨다. 물론 고대부터 중국인들은 천하의 바깥은 모두 바다라고 여겨 온 세상을 四海(사해)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 경험한 것은 동쪽 바다뿐이다. 谷(곡)은 골짜기를 뜻한다.

여기서 강과 바다는 통치자를, 온 골짜기는 민중을 가리킨다. 조정에서 직무를 맡은 관리들이나 귀족들은 통치자에 붙을 수도 있고 민중에 붙을 수도 있다. 꽤 유동적인데,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정치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관리나 귀족이 권력을 쥐고 행사하면서 오로지 가문의 융성과 존속에 마음을 둔다면 당연히 통치자에 붙을 것이다.

반면, 백성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며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정치에 마음을 두고 힘쓴다면 민중에 붙을 것이다. 그러나 관리와 귀족 가운데 민중에 속한다고 여긴 이들은 매우 적다. 수천 년 동안 민중이 억압과 횡포에 시달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황실이나 왕실에서 태어난 통치자는 백성을 지키며 천하를 태평하게 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다는 엄중한 훈육을 받지 못하고서 통치자가 되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천부의 권리라 여기기 쉽다. 역사에는 실제로 위엄을 내세우거나 위세를 부리지 않으면 통치자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無所不爲(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천하가 모두 제 것인 양 굴어야 군주답다고 여긴 군주가 매우 많았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