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 지(矢-3)만족할 족(足-0)써 이(人-3)고요할 정(靑-8)

다음은 ‘죽간본’ 7-2다. “夫亦將知足, 知足以靜, 萬物將自定.”(부역장지족, 지족이정, 만물장자정) “무릇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하리니, 만족할 줄 알고 고요해야 온갖 것들도 저절로 차분해지리라.” 여기서 靜(정)은 고요하다, 얌전하다는 뜻이다. 定(정)은 가닥이 잡혀서 들뜨지 않고 차분해지다는 뜻이다.

앞서 無名(무명)과 無欲(무욕)의 정치에 대해 말했는데, 여기서는 무욕의 또 다른 모습인 知足(지족)을 거론하고 있다. 지족은 이미 ‘죽간본’ 3-2(<64>)에서도 나왔다. “知足之爲足, 此恒足矣”(지족지위족, 차항족의) 곧 “만족할 줄 알면 만족하게 되리니, 이것이 한결같은 만족이다”가 그것이다. 이 지족이 여기서는 무욕 그리고 무명과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우선 이 구절의 주체는 후왕이다. 후왕은 존귀한 자리에 앉아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존재다. 후왕은 제후, 왕, 公(공) 따위로도 불리는 至尊(지존)이고, 스스로는 寡人(과인)이라 하며 신하들은 上(상) 또는 陛下(폐하)라 일컫는다. 그에게는 이렇게 존귀한 이름이 다양하게 붙는다. 한마디로 有名(유명) 가운데 有名(유명)인 존재다.

마찬가지로 그의 자리와 통치권도 자연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고 저절로 주어진 것도 아니다. 물론 하늘이 내린 것이라면서 상제나 천명 따위를 운운하지만, 아무런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대개 사후 합리화요 정당화일 뿐이다. 논리와 이치로 포장한 우격다짐일 뿐이다. 별별 이론을 다 갖다 대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런 것이 아님을 입증해준다.

왕실은 하늘이 점지해주고 왕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면, 참으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왜 왕조가 뒤바뀌고 하극상이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가? 민심은 천심이라면서 왜 백성을 괴롭히고 천하를 어지럽히는 昏君(혼군)과 暴君(폭군)이 그리도 많은가? 모두 유욕과 작위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역사서인 ‘尙書(상서)’와 ‘國語(국어)’에서 끊임없이 제왕의 길, 제왕의 일을 설파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