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할 정(靑-8)곧 즉(刀-7) 맑을 청(水-8) 밝을 명(日-4)

일이 잘 풀리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잘 풀리지 않더라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말할 사람도 있으리라. 분명 語不成說(어불성설)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대개 진리가 逆說(역설)로 표현되듯이 이 지족 또한 역설을 품고 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왜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또는 되어 가는지,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따져보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바둑 기사가 復棋(복기)하듯이 일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사태를 淡淡(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이 곧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일이 잘 풀려서 바라던 대로 된 것도 ‘내 몫’이듯이 일이 그릇되고 결과가 어그러진 것 또한 ‘내 몫’이다. 내 몫을 내 몫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만족할 줄 아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은 일이 잘못되거나 바라던 만큼 성과를 얻지 못하면, ‘몫’이 아니라 ‘탓’을 떠올린다. 이 ‘탓’은 그릇되게 보는 것이니, 그릇되게 보므로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呂氏春秋(여씨춘추)’ ‘似順論(사순론)’에 “正則靜, 靜則淸明, 淸明則虛, 虛則無爲而無不爲也.”(정즉정, 정즉청명, 청명즉허, 허즉무위이무불위야)라는 대목이 나온다. “올바르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맑고 밝아지며, 맑고 밝아지면 텅 비우게 되고, 텅 비우게 되면 애써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 일이 없게 된다.”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대로 본다. 그러니 올바르게 볼 리가 없다. 욕심이 일어나는 순간, 마음은 이미 바쁘다. 그러니 고요할 리도 없다. 올바르지 않고 고요하지 않으니, 어찌 밝은 지혜가 제 구실을 하겠는가? 지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데, 무슨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그러니 일이 어찌되어가든 만족할 줄 알아서 고요해질 수 있어야 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