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을 망(网-3)어조사 지(丿-3)그 궐(厂-10)맛 미(口-5)

장영의 말대로 밥을 짓는 데에도 이치가 있다. 그 이치에 따라 인디카 쌀은 찌거나 삶고 자포니카 쌀은 짓는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쌀을 쓰면서도 왜 한국에서는 밥이 밥상의 중심 또는 전부가 되고, 일본에서는 밥이 여러 요리 가운데 하나이거나 다른 요리의 재료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 차이에 대한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일단 밥맛 자체를 어떻게 느끼며 즐기느냐에서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인은 도드라지는 맛이 없어 단번에 느껴지지는 않지만 씹을수록 은근히 배어 나오는 그 깊고 단 맛을 알고 즐겼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쌀로 100여 가지가 넘는 떡, 수백 가지가 넘는 술, 감주, 엿, 미숫가루 따위를 만들어 즐기는 데서도 입증된다.

쌀과 밥을 다양하게 변주했다는 것은 그 맛과 영양을 깊이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한국 사람은 밥심이다”고 하는 근거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쌀은 영양학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전분 덩어리지만 쌀로 지은 밥은 입안에서 침과 섞이면서 전분이 인체에 영향을 주는 글루코오스로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단맛을 내는 포도당이다. 포도당은 뇌의 활동을 돕는 에너지이므로 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는 말이 맞다.

희한하게도 노자가 말한 無味(무미)의 경지를 음식에서는 밥맛이 가장 잘 보여주는데, 정작 중국인은 그 밥맛을 잘 모르고 오히려 한국인이 더 잘 알고 있다. 중국인의 요리가 수천 가지에 이르고 그 맛들도 각양각색이라 하지만, 노자의 말로 하자면 그 모든 맛들도 이 밥맛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또 기운을 뜻하는 氣(기)에 쌀 米(미)자가 들어가 있는데, 참으로 쌀을 기운의 원천으로 여긴 이들은 우리 한국인이다.

“羹之方沸, 罔之厥味”(갱지방비, 망지궐미) 곧 “국이 끓고 있을 때는 그 맛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이 밥맛은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맛에 길들어 있거나 어리석음, 지나친 걱정 따위로 마음과 생각이 들끓는 사람은 맛보기 어렵다. 부디 이 밥맛을 알고 즐겨서 삶에 윤기가 돌았으면 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