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일 운(辵-9)운수 명(口-5)말미암을 인(囗-3)가선 연(糸-9)

우리가 흔히 ‘타고나면서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쓰는 運命(운명)이라는 말을 살펴보자. 대부분 이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運(운)이라는 글자에는 정해져 있거나 고정돼 있다는 뜻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돌다, 움직이다, 옮기다는 뜻이 있다. 건강을 위해 평소에 해야 하는 ‘運動(운동)’에서 아무 움직임 없는 고정된 것을 느끼는가?

運數(운수)라는 말도 움직이는 수를 뜻한다. 시계를 보라. 시곗바늘이 비록 1에서 12 사이를 되풀이해서 돌고 돌지만, 그렇다고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그 때문에 우리도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지난다는 것을 느끼며 안다. 時來運到(시래운도), 때가 오면 운수도 이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따분해하고 지겨워하며 자신의 삶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것일까? 노자는 우리가 잘못된 앎, 그릇된 인식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분하거나 불안하거나 혹시나 해서 점을 보는 사람이 많다. 내 삶에도 반드시 어떤 轉機(전기)가 있을 것이라는 바람이나 기대를 갖고 점괘를 뽑아서 運勢(운세)를 보는데, 사실 그 운세도 움직이는 기세를 뜻한다. 변화를 바라고 기대하면서도 정해진 운수나 운세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니, 참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운명이나 운수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因緣(인연)이다.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하는 말은 인연을 정해진 연결고리로, 달리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연은 내 안의 원인인 因(인)과 내 밖의 원인인 緣(연)이 만나 생기는 것으로, 언제 어떻게 생기고 변하고 달라질지 알기 어려운 얽힘이고 맺음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온갖 인연의 얽히고설킴, 맺음과 풀림 속에서 사는데, 그러는 가운데서 ‘나’ 또한 달라지고 변화한다.

요컨대 운명이나 인연 모두 어떤 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며 고정된 것도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사람도 사물도 변화하기 마련이며, 변화한다는 것은 곧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이른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