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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260> 三跪九叩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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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1-09 19:58:19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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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삼(日-2) 꿇을 궤(足-6) 아홉 구(乙-1)조아릴 고(口-2) 머리 두(頁-7)

1600년에 동인도회사를 세운 뒤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천천히 강대국으로 변모해가던 영국은 중국과 무역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19세기까지 청 왕조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廣州(광저우)만 무역 창구로 열어놓았을 뿐이었다. 애가 단 영국은 乾隆帝(건륭제, 1735∼1796 재위)의 80세 생일을 노렸다.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북경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국의 사절단이 북경에 도착한 것은 1793년, 건륭제의 나이 83세 때였다.
청 왕조가 보기에는 朝貢(조공) 사절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청 왕조에서는 사절단의 단장인 조지 매카트니에게 황제를 만나면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三跪九叩頭(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라고 요구했다. 매카트니는 무릎을 꿇고 손에 입맞춤하는 것이 영국의 예법이라며 거부했다. 영국 쪽의 통상 요구는 모두 묵살되었다. 당시 건륭제가 영국의 국왕 조지 3세에게 보낸 勅諭(칙유)는 “아아, 너 국왕 …”으로 시작된다. “遠人(원인)에게 은혜를 더해 四夷(사이)를 어루만지며 기른다. … 天朝(천조)는 물산이 豊盈(풍영)하여 없는 것이 없고, 원래 外夷(외이)의 화물을 빌어 有無(유무)를 통하지 않는다.” 원인은 영국을 가리킨다. 천조는 말할 것 없이 청 왕조를 이른다. 유무를 통하는 것이 무역인데, 없는 것이 없이 풍부하고 가득하다면 무역을 할 여지가 없다. 무역의 여지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알려는 생각조차 없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대상, 새로운 지식, 새로운 변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의 여지조차 없었다.

문물과 제도,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자부심과 교만은 중국을 꽉 막힌 나라, 어떠한 풀무질도 할 수 없는 나라로 전락시켰다. 노자가 말했듯이 ‘虛而不屈(허이불굴)’ 곧 속이 비어서 다함이 없어야만 ‘動而愈出(동이유출)’ 즉 움직일수록 더욱 거세지는데, 생각과 마음이 오만함으로 꽉 막혀 있었으니 이미 역동성과 활력을 상실했다고 할 만하다. 이와 달리 영국은 풀무보다 강력한 증기기관을 발명한 나라답게 속이 비어 있는 나라였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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