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지(至-0)빌 허(虍-6)한결같을 항(心-6)어조사 야(乙-2)

노자는 “至虛, 恒也”(지허, 항야)라 했다. 마음이 텅 빔에 이르러야 한결같다는 뜻이다. 텅 빔 또는 비움이란 무엇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하늘과 땅 사이를 풀무와 같다고 했는데, 그 풀무의 속처럼 비어 있는 것을 이른다. 비어 있어야 풀무질을 할 수 있고, 풀무질을 해야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가 그렇게 비어 있기 때문에 온갖 것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至(지)’를 앞에 두어서 텅 빔에 ‘이른다’고 했다. 이는 비움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움과 채움을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비우기 때문에 채울 수 있고, 채운 뒤에는 다시 비운다. 생겨남과 사라짐, 태어남과 죽음이 거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를 흔히 循環(순환)이라 하는데, 노자는 ‘復(복)’이라는 글자로 나타내어 ‘돌고 돌며 되풀이되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돌고 도는 것이 자연이요 도이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자연이나 도가 長久(장구)하게 간다. 여기서 노자가 ‘恒(항)’을 쓴 이유가 드러난다.

‘죽간본’ 곳곳에서 노자는 ‘恒足(항족)’이니 ‘道恒亡爲也(항도무위야)’니 ‘道恒亡名(도항무명)’이니 하면서 恒(항)을 거듭 썼다. 이로써 항이 자연이나 도의 속성, 모습을 형용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죽간본’에는 없으나 ‘백서본’에는 “道, 可道也, 非恒道也; 名, 可名也, 非恒名也”(도, 가도야, 비항도야; 명, 가명야, 비항명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그러면 한결같은 도가 아니고, 이름은 이름으로 부를 수는 있으나 그러면 한결같은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恒(항)은 ‘周易(주역)’의 易(역)과 거의 같은 뜻을 갖는다. 역에 대해서는 대체로 易簡(이간), 變易(변역), 不易(불역) 세 가지 의미로 풀이한다.

이간은 역의 세계는 단순하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고, 변역은 우주와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뜻이며, 불역은 그런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기본 원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항 또한 늘 변하면서 영원히 이어짐을 뜻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