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물 거(尸-5) 하면서 이(人-3) 기다릴 수(頁-3) 돌아갈 복(彳-9)

이제 ‘죽간본’ 13-2다. “萬物方作, 居以須復也. 天道員員, 各復其根.”(만물방작, 거이수복야. 천도원원, 각복기근) “온갖 것은 바야흐로 일어나면 머물면서 돌아가길 기다린다네. 하늘의 길은 돌고 도니, 각각은 제 뿌리로 돌아가지.” 여기서 居(거)는 머물다, 살다는 뜻이다. 須(수)는 기다리다는 뜻이다. 復(복)은 돌아가다는 뜻이다. 員(원)은 둥글다는 뜻이며, 員員(원원)은 돌고 돈다는 뜻이다.

위 구절은 통행본과 사뭇 다르다. 통행본에서는 “萬物竝作, 吾以觀其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만물병작, 오이관기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으로 되어 있다. “온갖 것은 나란히 일어나는데, 나는 거기서 되돌아감을 본다네. 무릇 온갖 것들은 힘차게 자라지만, 각자 다시 뿌리로 돌아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대략적인 뜻은 다르지 않으나, 문맥으로 보아서는 ‘죽간본’이 더 적절하다.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가 드러날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간다! 綠陰(녹음)이 강렬했던 산과 들 곳곳이 요란하다. 나무마다 다투듯이 옷을 갈아입으며 저마다 色氣(색기)를 뽐내고 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들은 또 잎들을 떨구어내면서 앙상한 가지를 하나둘씩 드러내고 있다. 지난여름 그 맹렬한 더위도 별것 아닌 듯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더니, 이제는 서늘한 바람과 녹음의 變節(변절) 아니 變色(변색)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노자가 말한 “居以須復也”(거이수복야) 곧 “머물면서 돌아가기 기다린다네”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장자에게도 그러하지만 노자에게도 ‘기다림’은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개념이다. 대체로 待(대)로써 나타내는 이 기다림은 흔히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그 막연하고 막막한 기다림, 하릴없는 기다림, 아쉬움과 애달픔의 哀調(애조) 띤 기다림,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 같은 기다림이 아니다. 가 버리는 것은 보내주는 기다림이요, 온 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서 누리고 사는 기다림이며, 올 것은 미리 안 듯이 맞아들이는 기다림이다. 어디선가 왔듯이 어디론가 갈 것을 알면서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사는 기다림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