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자(自-0) 해칠 포(日-11) 버릴 기(木-8)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대체로 ‘대의제 민주주의’로, 정치적 의사 결정권을 다수가 지배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전체 시민이 그 결정권을 행사하는 정치 형태다. 그런데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이 대개 투표권이라는 소극적인 권리를 행사할 뿐이어서 민주주의가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건 ‘獨裁(독재)’가 곧잘 이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에 시민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파수꾼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이 파수꾼이 되어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꾼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의 저자인 존 킨(John Keane) 교수가 특히 활발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파수꾼 민주주의를 깨어 있는 시민, 침묵하지 않고 소신껏 발언하는 시민, 자신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외치고 고발하는 시민들이 주도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민주주의에서는 발언, 외침, 고발 따위의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다.

사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만, 그 자유의 범위는 늘 애매하고 모호해서 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 8월부터 시작된 청와대의 국민청원 제도를 보라. 국민 누구나 참여하여 청원할 수 있게 하자, ‘윤창호법’으로 이어진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비롯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청원이 있었다. 아울러 이게 청원할 거리인가 싶은 청원도 적지 않았다. 연말에 있었던 ‘SBS 연예대상’과 관련한 청원 같은 것 말이다.

존 킨 교수가 말한 ‘소신껏 발언하는 시민’은 곧 ‘깨어 있는 시민’이다. 자각하고 양심이 있는 시민, 범거경과 장원백 같은 선비 시민! 물론 그런 시민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그런 시민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과 삶을 해치고 민주주의를 버리는 짓이다.

맹자가 말했다.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자포자, 불가여유언야; 자기자, 불가여유위야)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와는 함께 말할 게 없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함께 할 일이 없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