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을 여(臼-7) 무리 중(血-6) 살생(生-0) 한가지 동(口-3)

앞서 혜숙과 혜공, 원효의 이야기를 했는데, 얼핏 생각하면 붓다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그들의 삶은 그다지 새롭다거나 기이하다고 할 것도 없다. 특히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대승불교가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리, 하화중생) 곧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自利行(자리행)과 利他行(이타행)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혜숙과 혜공, 원효 세 승려는 이러한 대승불교의 이념을 충실하게 구현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특별하게 여기고 기록으로 남긴 까닭은 무엇인가?

중세는 이른바 ‘종교 시대’였다. 이 시대에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 같은 종교가 탄생하거나 전파되었고, 교리의 체계와 교단 조직이 갖춰졌으며, 세속의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 깊이 또 널리 침투해서 지대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쳤다. 종교가 세속의 윤리와 삶의 지침을 제공했으므로 그 교리도 지배적 관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종교 수행자들은 존경의 대상이 됐고, 성자나 고승은 종교적 영웅으로서 숭배되었다.

종교적 수행자는 신분의 제한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출신이 왕족이든 귀족이든 혹은 농민이든 간에 종교 교단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출신은 무의미해졌다. 이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진리가 현실적으로 적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단의 일원이 되는 순간, 속세와 인연이 끊어지면서 도리어 교단 내의 또 다른 위계 속에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는다. 나아가 성스러운 교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세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차별적 인식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고요하고 신성한 사찰을 벗어나 티끌세상에서 민중과 뒤섞여 살았던 혜숙과 혜공, 원효를 당시에 지배층과 가까웠던 僧家(승가)에서 배척하고 멸시했던 것도 승려들은 고귀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차별적 인식의 표현이었다. 민중만이 그런 승려들을 붓다의 진정한 제자로, 민중의 참된 벗이자 스승으로 여기고 숭앙했다. 與衆生同(여중생동), 즉 중생과 하나가 되었으므로!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