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辵-9) 아닐 불(一-3) 싸울 전(戈-12) 다툴 쟁(爪-4)

옛날 우리네 밥상에 올라왔던 방짜 유기는 놋쇠 덩어리를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드리기를 무려 1000번을 해서 얻은 것이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그릇은 그저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메자국(망치자국)의 그 은은한 멋을 풍기며 음식을 쉬 상하지 않게 하는 오묘한 작용까지 한다고 알려져 있다.

딱딱한 금속도 불에 달구어 柔弱(유약)하게 만들면 融通(융통)할 수 있어 갖가지 형태의 기물이 된다.

사람도 이 유연함과 융통함을 갖추어야 기회를 얻고 위기를 넘길 수 있으며, 창조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이치를 모르거나 잊은 채 처음부터 “오로지 굳세고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본디 부드럽고 여린 것조차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몸은 본래 부드럽고 여린 것이었다.

어린아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몸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거나 마음을 쓰는 일도 보라. 눈앞에 있는 것에 온통 마음을 쏟다가도 문득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면 거기로 마음을 쏟는다. 앞서 있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말이다.

편견도 선입견도 고정된 관념도 없다. 생각할 만하면 생각할 뿐, 그 생각에 매달려 허덕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른은 어떤가? 생각도 마음도 몸처럼 굳어져 버린 이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대개는 몸보다 먼저 생각과 마음이 굳는 듯하다. 생각과 마음이 굳는 줄은 잘 몰라도 몸이 굳는 것은 잘 느끼고 알기 때문이리라. 요즘 널리 쓰는 ‘꼰대’라는 은어도 따지고 보면 생각과 마음이 굳어버린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자’ ‘道德(도덕)’에 나온다. “强大有道, 不戰而克; 小弱有道, 不爭而得.”(강대유도, 불전이극; 소약유도, 불쟁이득) “강하고 큰 데에 도가 있으니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작고 약한 데에 도가 있으니 다투지 않고 얻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다투지도 않으면서 바라는 것을 얻는 비결은 유기그릇을 만드는 비법과 같지 않을까?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고 마음을 비울 줄 알아서 원만하게 융통하는 것.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