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로 횡(木-12) 말할 설(言-7) 세로 수(立-8)

주희는 ‘止(지)’에 대해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니, 바로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곳이다. 이를 안다면 뜻에 일정한 방향이 있을 것이다”고 풀이했다<587>.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靜, 謂心不妄動; 安, 謂所處而安; 慮, 謂處事精詳; 得, 謂得其所止.”(정, 위심불망동; 안, 위소처이안; 려, 위처사정상; 득, 위득기소지) “정은 마음이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을 이르고, 안은 머문 곳에서 편안해 하는 것이며, 려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 정밀하고 상세함을 이르고, 득은 머물 곳을 얻음을 이른다.”

이미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곳을 알고 뜻도 정해졌다고 해버리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해진다는 말은 군더더기가 되지 않을까? 또 ‘得(득)’에 대해 ‘머물 곳을 얻음을 이른다’고 해석했는데, 이 무슨 말인가?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곳을 얻어 머물고 있다고 해놓고서는 다시 머물 곳을 얻었다니. 이야말로 重言復言(중언부언)이요 橫說竪說(횡설수설) 아닌가? 어찌 성리학을 집대성했다는 주희 대학자께서 이런 해석을 했을까?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四書(사서)는 실제의 경험, 그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담고 있다. 워낙 고전이라 구체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으나, 일반적인 경험과 보편적인 사실을 통해 검증되고 입증될 정보가 담겨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마땅한데, 주희는 ‘性(성)’과 ‘理(리)’라는 관념론과 윤리론을 앞세우느라 그 점을 간과하고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관념적으로 해석했다. 죽을 때까지 수정을 거듭함에도 해석에서 파탄을 면치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도덕이나 윤리뿐만 아니라 문학도 역사도 철학도 경험적 사실 위에서 구축된다. 의학과 과학에서는 실험을 중시하는데, 실험도 일종의 경험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가설도 경험이나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권위를 못 갖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념과 관습, 지위나 명성 따위에 이끌려 경험적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권위임을 망각하거나 간과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