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지(矢-3) 멈출 지(止-0) 말 이을 이(而-0) 뒤후(口-3)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지지이후유정, 정이후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 ‘대학’의 이 문장을 주희의 해석에 따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쳐야 할 곳 곧 지극히 좋은 곳에 머물 줄 안 뒤에 뜻에 일정한 방향이 있으니, 일정한 방향이 있은 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뒤에 편안해질 수 있고, 편안해진 뒤에 정밀하고 상세하게 생각할 수 있고, 정밀하고 상세하게 생각한 뒤에 머물 곳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지극히 좋은 곳에 머물 줄 안다고 해놓고서 끝에 가서 다시 머물 곳을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 해석이 뫼비우스의 띠 같다. 제 꼬리를 물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뱀의 우스꽝스런 꼴과 다름없다. 이는 경험적 사실에 입각해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설프지만, 경험적 사실로 다가간 내 번역을 한 번 보라. “멈출 줄 안 뒤에야 차분해지고, 차분해진 뒤에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해진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해진 뒤에야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생각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번역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는데, 스스로 계획한 대로 또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는 잘 없다. 바랄 만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좋겠으나, 그런 상황은 복권 당첨만큼이나 드물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전개, 예기치 못한 사태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는 대체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먼저 느끼고, 이어 허둥대거나 걱정한다. 때로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져 손을 놓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배우고 익힌 것이 많다 한들, 그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억지로 써먹으려 하다가는 “소 대가리에 말 궁둥이 갖다 붙인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럴 때, 지(止) 곧 멈추어라! 멈춘다는 것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상념이나 마음속을 들락날락하는 걱정 따위를 다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큰 배움의 길은 여기서 시작된다.

고전학자